원호

한자 原戶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러시아  
시대 근대/개항기|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정의

1860년대 이후 러시아에 입적하여 토지를 분여받고 지주가 된 재러 한인 이주민 계층.

개설

1860년대 이후 조선의 함경도 지방에 살던 사람들은 두만강을 몰래 넘어 러시아 땅으로 들어갔는데, 그 인원 수는 해마다 증가하였다. 러시아 연해주 지역으로 이주한 한인들은 러시아 국적 취득 여부로 구분되었다. 러시아 국적을 취득한 귀화 한인을 원호(原戶)라고 불렀고, 국적을 취득하지 않은 비귀화인을 여호(餘戶)라고 불렀다.

변천

러시아 국적을 취득한 귀화 한인들에게는 1호당 15데샤치나[약 16.4㏊]의 토지가 무상 분배되었다. 토지를 분배받은 귀화 한인들은 이를 기반으로 어느 정도 부를 축적할 수 있었다. 이에 반해 귀화하지 않은 비귀화 한인들은 귀화 한인 밑에서 소작하거나 고용 노동자로 일해야 했다. 이런 경제적 격차로 말미암아 원호인들은 부농으로 성장하는 경우가 있었고, 러시아 연해주 한인 사회에서 지배적 위치도 차지할 수 있었다.

원호와 여호 사이의 차이는 경제적 부분에만 그친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존재했다. 토지를 가진 원호인은 소작이나 고용 노동을 하는 여호인과는 한 자리에 앉지도 않았고, 통혼도 하지 않았다. 원호인들은 여호인을 낮춰서 ‘아재비’라거나 ‘네베제우[두루미]’라고 비꼬았고, 거꾸로 여호인들은 원호인들을 ‘얼마우재[제2의 러시아인]’ 또는 ‘개자식’이라고까지 적대감을 표현했다. 원호인이 사는 마을과 여호인이 사는 마을도 구분했는데, ‘남7사(南七社)’와 ‘북4사(北四社)’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근처의 대표적인 원호인 마을을 지칭하는 표현이었다.

이런 경제적이고 사회적인 이질감은 1917년 러시아 2월 혁명 이후 원호인들이 볼셰비키보다는 멘셰비키를 지지하게 하였고, 이후 원호인들은 볼셰비키를 지지한 여호인들과 독립운동 과정에서도 꾸준히 반목하게 되었다. 1917년을 전후한 시기에 러시아 연해주 지방에 거주하는 한인들은 10만여 명으로 추산되는데, 그중 원호인은 2만여 명이었다.

참고문헌
  • 임경석, 『한국 사회주의의 기원』(역사비평사, 2003)
  • 윤상원, 「시베리아 내전의 발발과 연해주 한인 사회의 동향」(『한국사학보』41, 고려사학회,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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