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

한자 餘戶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러시아  
시대 근대/개항기|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정의

1860년대 이후 러시아 이주 한인 가운데 러시아 비입적자로 토지를 분여받지 못해 소작인이나 노동자로 생활하는 한인 이주민 계층.

개설

1860년대 이후 러시아 연해주 지역으로 이주한 한인들은 러시아 국적 취득 여부로 구분하여 불렀다. 러시아 국적을 취득한 귀화 한인을 원호(原戶)라고 불렀고, 국적을 취득하지 않은 비귀화인을 여호(餘戶)라고 구분하여 불렀다.

여호와 원호의 경제적 차이

러시아 국적을 취득한 귀화 한인들에게는 토지가 무상 분배되었지만, 귀화하지 않은 비귀화 한인들은 귀화 한인 또는 러시아인 밑에서 소작을 부치거나 고용 노동자로 일해야 했다. 여호인이 맺은 소작 기간은 보통 1~2년으로 매우 짧았고, 소작료도 40~60%에 달하는 고율이었다. 토지를 소유한 원호인들에 비해 여호인들은 경제적으로 열악한 환경에서 생활하면서, 러시아 연해주 한인 사회의 기층 계급을 형성했다.

여호와 원호의 사회적 차이

원호와 여호 사이의 차이는 경제적 부분에만 그친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격차가 존재했다. 토지를 가진 원호인은 소작이나 고용 노동을 하는 여호인과는 한 자리에 앉지도 않았고, 통혼도 하지 않았다. 이처럼 여호인과 원호인 사이에 이질감과 적대감이 강했기 때문에 여호인들은 원호인들을 ‘얼마우재[제2의 러시아인]’ 또는 ‘개자식’이라고 부르면서 적대감을 표현했고, 원호인들도 여호인을 낮춰서 ‘아재비’라거나 ‘네베제우[두루미]’라고 비꼬았다.

여호와 원호의 반목

이런 경제적·사회적 격차는 1917년 러시아 2월 혁명 이후 여호인들이 볼셰비키가 주도하는 소비에트에 급격히 끌리게 하였고, 이후 케렌스키의 임시 정부를 지지한 원호인들과 꾸준히 반목하였다. 1917년을 전후한 시기에 러시아 연해주 지방에 거주하는 한인들은 10만여 명으로 추산되는데, 그중 여호인은 8만여 명이으로 2만여 명의 원호인보다 더 많았다.

참고문헌
  • 임경석, 『한국 사회주의의 기원』(역사비평사, 2003)
  • 윤상원, 「시베리아 내전의 발발과 연해주 한인 사회의 동향」(『한국사학보』41, 고려사학회,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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