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할린 한인의 북송

원어 항목명 Отъезд сахалинской корейской молодежи для учебу в Северную Корею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러시아 사할린주  
시대 현대/현대
상세정보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56년
원어 항목명 Отъезд сахалинской корейской молодежи для учебу в Северную Корею
정의

1956년 러시아 연해주 나홋카시 북한 영사관의 주도로 사할린 한인을 북한으로 이송한 사건

개설

1956년 북한 정부는 연해주 나홋카시에 영사관을 설치한 뒤 사할린 한인을 북송하기 위해 적극적인 포섭 정책을 펼쳤다. 북한 영사관의 사할린 한인 북한 정착 계획에 사할린 한인들은 매우 부정적인 견해를 취하였으나, 청년들 중심으로 한 사할린 한인들이 김일성종합대학에서 무료로 교육을 받을 기회를 제공하겠다고 한 북한의 약속을 믿고 북한으로 떠났다.

북한의 사할린 한인 북송 계획

러시아 연해주 나홋카시 북한 영사관의 주요 활동은 북한으로 한인을 이송하기 위해 선전 집회와 모임을 조직하는 것이었다. 집회와 비밀 모임 등에서 북한 정부가 관심을 두고 있는 무국적 한인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북한 체제의 우수성을 선전하였으며 정기적으로 자금을 모았다. 북한 영사관은 집단 이송을 위한 사전 작업으로 무국적 한인에게 사할린주의 게토 지역으로 이주하라고 제안하였는데, 궁극적 목적은 사할린 한인을 북한으로 집단 이송하기 위한 것이었다. 게토 지역이란 민족, 인종, 종교적 특징으로 차별 대우를 받는 사람을 강제로 정착시키려고 대도시 일부 지역에 마련한 마을이다.

북한 영사관의 사할린 한인 북한 정착 계획에 사할린 한인들은 매우 부정적인 견해를 취하였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뒤 게토 지역으로 이주한다는 계획이 있었는데, 이 계획은 사할린 한인 사이에서 공포의 감정만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다. 소련 정부도 사할린 한인 북한 정착 계획에 반대 입장을 표명하였는데, 그 이유는 북한의 제안대로 사할린섬의 게토 지역으로 이주하면 소수에 불과한 한인은 고립될 것이라는 전망 때문이었다. 이 사건 이후 대부분 사할린 한인은 소련에서 무국적으로 살거나 소련 시민권을 획득하는 것이 더 낫다고 판단하여 북한 이송을 포기하였다.

사할린 한인의 북송

북한 영사관은 한인들에게 북한 시민권을 취득한 뒤 가족과 함께 북한으로 갈 것으로 제안하는 한편, 청년들에게는 김일성종합대학에서 무료로 교육을 받을 기회를 제공하겠다고 약속하였다. 사할린에서 한인 학교를 졸업했거나 졸업 예정인 많은 청년들이 북한 영사관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한인 청년은 러시아어를 잘 모르기 때문에 대학 입학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소련의 대학에 입학하려면 전공 불문하고 러시아어와 수학은 필수적이며, 전공 과목 시험도 치러야 하기 때문에 러시아어를 구사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대학에 입학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그래서 한인 청년은 학업을 위해 북한으로 떠났다. 북송된 대다수 사할린 출신 한인 청년은 북한에서 결혼하고, 취직하였으며 소련으로 되돌아오지 않았다.

자브롭스카(Забровска Л. В.)가 수집한 자료에 따르면, 1958~1959년 5,096명이 북한 시민권을 취득한 뒤 북한으로 향하였다. 여기에는 학업을 위해 북한으로 간 사할린 한인뿐만 아니라 북한으로 영구 이주한 가족들도 포함되어 있다.

참고문헌
  • Дин Юлия Ивановна, 『Корейская диаспора Сахалина: проблема репатриации и интеграция в советское и российское общество』(Южно-Сахалинск: Сахалинская областная типография, 2015)
  • Забровская Л. В., 「Российские корейцы и их связи с родиной предков(1990~2003 гг.)」(『Проблемы Дальнего Востока』, № 5, 2003)
  • Кузин Анатолий Тимофеевич, 「Послевоенная вербовка северокорейских рабочих на промышленные предприятия Сахалинской области(1946~1960-е гг.)」(『Россия и АТР』№ 3,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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