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할린 한인에 대한 소비에트의 민족 정책

원어 항목명 Советская национальная политика по отношению к сахалинским корейцам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러시아 사할린주  
시대 현대/현대
상세정보
원어 항목명 Советская национальная политика по отношению к сахалинским корейцам
정의

소비에트연방 정권이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사할린 한인을 대상으로 추진했던 교육 및 문화 정책.

개설

2차 세계 대전 이후 소비에트연방의 사할린 한인에 대한 정책은 크게 교육 정책과 문화 정책으로 나눌 수 있다. 교육 정책은 정규 학교 교육 확대와 성인들의 문맹 퇴치를 위한 정책으로, 문화 정책은 문화 공연단 조직과 정치 모임 조직을 위한 정책으로 나눌 수 있다.

소비에트연방의 사할린 한인 민족 정책 수립 배경

사할린과 쿠릴 열도에 소비에트 정권이 수립되면서 가라후토에 거주하던 한인은 소비에트연방의 정책에 규정을 받게 되었다. 사할린주 정부의 첫 정책은 경제와 행정 체계를 정돈하는 것이다. 정치과 경제 체제의 개혁이 이루어졌고, 소비에트 시민들이 이 지역으로 이주해 왔다. 사할린과 쿠릴 열도 소비에트 주 정부의 중요한 과제는 일본인, 한국인과 상호 관계를 정립하기 위해 민족 정책을 수립하는 것이었다. 이는 사할린 한인에게 소비에트 체제의 우수성을 선전하고 사할린 한인에 대한 이데올로기 교육을 위해서도 필요한 정책이었다.

소비에트연방의 사할린 한인 교육 정책

소비에트 정권이 추진한 교육 정책은 정규 학교 교육 확대와 성인 문맹 퇴치 교육을 위한 정책으로 나눌 수 있다. 소비에트 정권은 아이들에게 정치와 이념 교육을 하기 위해 초등 교육을 보급해야만 했다. 이를 위해 한인 학교를 설립하기 시작했으며, 한인 학교는 1963년부터 1964년까지 존속했다. 한인 학교는 사할린 한인의 교육과 사할린 한인의 소비에트 체제 적응에 큰 역할을 했다. 다른 한편 소비에트 정부가 성인들의 문맹 퇴치에 큰 노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 1958년 사할린주 주민 중 6,106명이 문맹이었고 그중 1,469명이 한인이었는데, 문맹을 벗어난 한인이 70%에 달했다.

소비에트연방의 사할린 한인 문화 정책

소비에트연방 정권이 추진한 문화 정책은 문화 공연단 조직과 정치 모임 조직을 위한 정책으로 나눌 수 있다. 1947년 사할린주 필하모니 산하에 한인 콘서트 공연단과 연극 공연단이 조직되었다. 1949년 11월 한인 콘서트 공연단과 연극 공연단에 기반을 둔 사할린 한인이동극장이 유즈노사할린스크시 하바롭스크 거리와 크류코프 거리의 교차로에 위치한 전(前) 일본 극장 건물에 설립되었다. 사할린 한인이동극장에서는 한국 문학 작품, 소비에트 희곡 작가의 작품을 주로 공연되었다. 하지만 1950년대 말 주요 관객이 한인이 아니라 러시아인이라는 점, 적자가 누적되었다는 점 때문에 사할린 한인이동극장은 한인 음악단과 한인 무용단으로 재조직되었다. 1952년 전(全) 연방공산당 볼셰비키 사할린주 위원회가 사할린주 한인을 위해 추가 문화 정책을 발표함으로써 정치 모임, 문맹 퇴치 모임이 조직되었고 한인들의 반혁명·사보타지·투기 단속 활동이 강화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소비에트연방 정권이 추진한 민족 정책의 일환으로 한인 학교, 신문, 라디오, 클럽 등이 설립되었는데, 이는 사할린 한인의 삶에 큰 영향을 주었다.

참고문헌
  • Дин Юлия Ивановна, 『Корейская диаспора Сахалина: проблема репатриации и интеграция в советское и российское общество』(Южно-Сахалинск: Сахалинская областная типография,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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