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오도강

한자 庚午渡江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러시아  
시대 근대/개항기
상세정보
특기 사항 시기/일시 1869년
러시아 하산 비노그라드노예
정의

1869년에 있었던 러시아령으로의 대규모 한인 이주.

개설

1860년대 이후 러시아령을 향한 한인 이주는 1869년에 절정에 달했다. 이주의 주요 원인은 기근과 기대감 때문이었다. 1867년에서 1868년 사이에 발생한 ‘기사흉년(己巳凶年)’과 1869년 여름의 물난리는 조선 북부 전 지역에 걸쳐 대규모 흉작과 심각한 식량난을 초래했다. 1864년 갑자도강으로 이미 러시아로 이주하여 4년의 시간을 보낸 한인들의 이야기를 통한 더 나은 삶을 향한 기대감이 1869년의 대량 이주에 큰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이주 경로

1867년과 1868년의 대흉년과 그에 따른 대기근으로 1869년 9월 30일부터 이주가 시작되었다. 1869년 9월 말부터 10월 초 사이에 1,850명의 농민[남자1,300명, 여자 550명]이 다양한 루트를 통해 러시아 연해주 지신허 마을로 이주했다. 이어서 1869년 11월 말부터 12월 초 사이에는 4,500명이 지신허로 이주했다. 1869년 당시 러시아 연해주 지신허 마을과 인근의 러시아 연해주 얀치헤[연추] 마을에 982가구 5,915명의 한인들이 거주하고 있었는데, 이들 가운데 673가구 3,845명은 생존 수단도 없이 맨손으로 월경한 자들이었다.

한인 농민의 이주 경로는 대부분 만주와의 접경지대인 중국 훈춘(琿春)를 경유하여 주로 야간에 이루어졌다. 국경 지대의 조선, 중국, 러시아 초병들에 비해 만주의 초병들은 한인 이주민들에게 가혹했다. 이주민들의 재산을 강탈했고 죽이기도 했다. 조선 정부는 국경 수비를 강화했고 이주하다 잡힌 한인은 극형에 처했다. 이주에 성공한 후에도 혹독한 추위로 인해 러시아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를 비롯해 다른 거주지로 이동하는 것이 어려워 많은 이주 한인이 삼림과 황야에서 죽어 갔다.

기사흉년 이후의 한인 월경 이주 과정에서 러시아 연해주 연추, 목허우, 지신허 마을 등지에 아사한 시신이 많이 발견되었고 먹을 것을 구할 수 없어 가족도 버리는 상황이 발생했었다고 계봉우「아령실기」에 적고 있다.

참고문헌
  • 반병률, 「러시아 원동 지역 초기 한인 마을 형성과 러시아의 정책에 대한 재해석」(『역사문화연구』40, 한국외국어대학교 역사문화연구소, 2011)
  • 계봉우, 「아령실기」(『독립신문』, 1920. 2. 20~1920. 4.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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