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 항목명 | Ташкент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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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우즈베키스탄 |
시대 | 현대/현대 |
원어 항목명 | Ташкент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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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적 | 15,300㎢ |
인구[남/여] | 2,644,400명[2011년 통계] |
1937년 고려인들이 강제 이주된 우즈베키스탄의 수도 타슈켄트와 그 주변 지역.
투르크어로 ‘돌’을 뜻하는 타슈와 소그드어로 ‘도시’를 뜻하는 켄트가 결합한 ‘돌의 도시’라는 어원을 가지고 있다.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주에 고려인이 거주한 것은 1924년부터로 기록되어 있다. 1926년 인구 조사에서 의하면, 타슈켄트주에 36명의 고려인이 살았다. 1937년에 스탈린에 의해서 강제 이주를 당한 고려인 대부분은 타슈켄트주의 치르치크강 주변에 존재했던 집단 농장에 거주했다. 이 당시에 고려인 9,807가구가 여러 집단 농장에 분산되어 살다가 점차적으로 고려인 집단 농장에 집중적으로 모여 살았다. 타슈켄트주의 고려인은 치르치크강의 물줄기를 끌어들여서 농토를 확장하고 뛰어난 농사 기술로 수확량을 매년 증대시켰다. 소비에트 정부가 전국적으로 그리고 해외에도 자랑했던 ‘북극성’과 ‘폴리타젤’은 대표적인 고려인 집단 농장이었다.
타슈켄트는 명실상부한 우즈베키스탄 고려인 사회의 중심지로서 역할을 했다. 김병화가 지도하는 북극성 집단농장과 황만금이 지도하는 폴리타젤 집단농장은 소련에서도 생산성이 가장 높은 집단 농장으로 인정받았다. 농장 자체적으로 학교, 극장, 운동장, 발전소까지 갖추고 있었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일 때, 타슈켄트주에 위치한 고려인 집단 농장은 스탈린에게 국방 성금을 기부하였다. 전쟁 이후에도 타슈켄트주의 고려인 사회는 우즈베키스탄 고려인을 이끌어 가는 중심지로 발전하였다. 우즈베키스탄의 수도인 타슈켄트와 지리적으로도 가까웠던 두 집단 농장의 발전은 고려인 이주 2세부터 안정적으로 학업에 집중하여 전문직에 종사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