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타

원어 항목명 Чита
한자 赤塔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러시아 자바이칼지방 치타시  
시대 근대/개항기|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653년
변천 시기/일시 1920년 10월 22일
변천 시기/일시 1922년 11월 15일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05년
원어 항목명 Чита
GPS 좌표 북위 52° 06' 동경 113° 23'
면적 534㎢
인구[남/여] 339,453명[2016]
정의

한인들이 이주하였던 러시아 자바이칼주의 도시.

개설

치타는 러시아 시베리아 남동부에 있는 도시로 2008년까지는 치타주의 주도였고, 현재는 자바이칼주의 중심 도시이다.

명칭 유래

치타라는 명칭은 위구르어로 요새[чыт]라는 뜻의 단어에서 유래했다.

형성 및 변천

치타는 1653년 인고딘스코예(Ингодинское)라는 명칭을 가지고 러시아 군대의 월동지로 건설되었다.19세기 전반에는 데카브리스트들의 주요 유형지가 되었다. 1851년에 시로 승격되었다. 1900년에는 시베리아 철도가 개통되었다. 1905년12월에 치타를 중심으로 치타 공화국이 수립되었지만, 1906년 1월에 러시아 정부에 의해서 해체되었다. 1911년 9월 치타에 거주하는 한인들을 중심으로 대한인국민회 시베리아 총회가 조직되었고, 이강정재관의 주도로 기관지 『대한인정교보』를 간행하기도 했다. 러시아 혁명 이후, 시베리아 출병에 의해서 파견된 일본군이 1918년 9월에 치타를 점령했지만, 1920년 10월 22일에는 다시 적군이 점령하면서 극동공화국에 포함되었다. 극동공화국의 수도는 베르흐네우딘스크[현재의 울란우데]에서 치타로 옮겨졌다. 치타는 1922년 11월 15일에 극동공화국이 해체되면서 러시아에 병합되었다. 1919년 즈음 한인 이주민이 약 20만 명이었으며, 1922년 말에는 25만 명에 달했다고 한다.

자연환경

건조하고 극심한 대륙성 기후이며 여름은 따뜻하고 매우 짧다. 겨울이 길고 건조하며 춥다. 연 강수량은 240~400㎜ 정도이다. 7월 평균 기온은 17~21℃, 1월 평균 기온은 –26~-33℃이다.

현황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인 1946년 8월 2일 소련 내무부[МВД СССР]의 훈령에 따라 한인들은 새로운 여권을 발급받게 되었는데, 주거지에 제한을 두지 않는 일반적 권리를 가지는 것이었다. 이때부터 1947년 3월까지 일부 한인 특별 이주자들 역시 주거 제한이 없는 여권을 받고 귀향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이들은 여전히 강제 이주되었던 극동 변경주로 돌아가 살 수 없었고 부랴아트(Буряад) 자치 공화국, 몽골 자치 공화국 그리고 치타주에서 거주할 수 없었다. 이러한 제한 규정은 스탈린이 사망한 후 특별 이주자들에 대한 감시와 주거 제한의 범위가 느슨해지고 흐루시초프가 주도한 명예 회복 조치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소련 국가안전인민위원회[НКГБ СССР]의 일반 원칙에 따라 반혁명 범죄 조직에 대한 감시와 마찬가지로 계속 수행되었다. 치타는 2008년 3월 1일에 아긴스크부랴트 자치구와 함께 자바이칼주로 통합되었다.

참고문헌
  • 박환, 『러시아 한인 민족 운동사』(탐구당, 1995)
  • 계봉우, 「아령실기」(『독립신문』, 1920. 2. 20~1920. 4.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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