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풍

한자 秋風|秋豊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러시아 연해주지방  
시대 근대/개항기|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869년
변천 시기/일시 1872년
성격 한인마을
정의

개항기 이후 1937년까지 러시아 연해주 남부에 있던 재러 한인 정착 마을.

개설

러시아 연해주에 있는 재러 한인들의 초기 정착 마을 중 하나이다. 수이푼 평야에는 이른바 추풍4사(秋風四社)로 불렸던 대표적인 한인 마을로, 우수리스크시 서쪽 수이푼강[현 라즈돌리나야강] 근처 마을인 푸칠로브카(Пуциловка), 코르사코프카(Корсаковка), 크로우노브카(Кроуновка), 옥챠브리스키 지역의 시넬리코보(Синельково)가 있었다. 4개의 마을 모두 귀화 한인인 여호 마을이었다.

명칭 유래

추풍 지역에 최초로 형성된 푸칠로브카 마을은 새로운 정착촌 계획을 책임졌던 푸칠로라는 관리의 이름을 따서 지은 것이다. 한자로 육성촌(六城村)이라고도 했다. 코르사코프카 마을은 ‘허커우[河口]’라고 했으며, 크로우노브카 마을은 ‘황커우[黃口]’라고 했다. 시넬리코보 마을은 그 주변의 토지가 비옥해서 영안평(永安坪), 대전자(大甸子), 대지안현(大地安峴)이라고 불렀다.

형성 및 변천

1860년 후반에 함경도로부터 한인 이주민이 러시아 연해주 최초의 한인 마을인 지신허로 대거 유입되자, 러시아 당국은 한인 이주민들을 다른 지방으로 이동시켰다. 새로운 정착지로 연추 마을이 형성되고, 1867년 조선에서 150여 가구가 연추 마을로 이주했다. 이들 중 일부가 연추 마을에 남고, 나머지 한인 이주민들은 블라디보스토크로 이동했다가 영구 정착을 위해 수이푼강[綏芬河] 근처로 최종 이주했다. 이렇게 새로이 개척된 푸칠로프카 마을이 추풍 지역 최초의 한인 마을이다. 추풍 지역에 푸칠로브카 마을이 개척되고 이어서 코르사코프카, 크로우노브카 마을이 세워졌고, 다시 3년 정도가 지나서 1872년에 시넬리코보 마을이 형성되었다. 이 4개의 마을을 합쳐서 ‘추풍4사(秋豊4社)’ 또는 ‘북4사(北4社)’라고 부른다. 추풍4사는 개척 시기가 조금 다르지만 주민들의 생활 조건 등은 매우 비슷해서 하나의 마을로 여길 수 있을 정도였다. 또한 추풍의 4개 마을은 연추, 지신허, 자레치예, 아지미, 시지미, 강어재, 차머우를 일컫는 ‘남7사(南7社)’와 함께 원호인들이 모여 사는 대표적인 귀화 한인 마을이었다. 1871년 1월 러시아 정부가 조사한 자료에 의하면 추풍 지역의 인구는 1,200명이었다. 1885년경 조선 정부가 파견하여 연추추풍 지역을 둘러본 김광훈, 신선욱이 남긴 기록에는 푸칠로브카에 274호 2,827명, 시넬리코보에 237호 2,673명, 코르사코프카에 229호 1,569명이 살았다고 한다. 1914년 일제의 정보 보고에는 푸칠로브카와 시넬리코보에 각각 1,200여 명이 살고 있고, 코르사코프카에 1,000여 명이 있다고 한다.

자연환경

추풍 지역은 러시아 연해주 니콜스크우수리스크[蘇王領] 서쪽 지역으로 중국에서 발원해서 러시아 연해주를 거쳐 하바로프스크로 흐르는 수이푼강 유역 일대를 말한다. 이 지역은 두만강을 건너온 한인들이 정착하기 쉬운 지리적 이점과 함께 수이푼강 유역의 평원이 농사 짓기에 유리한 지역이었기 때문에 재러 한인 정착촌이 많이 생겨났다.

현황

1937년 강제 이주 이후 한인 마을은 사라졌다. 현재 푸칠로브카 초등학교 운동장에 예전 한인들이 사용하던 연자방아 등이 전시되어 있다.

참고문헌
  • 반병률, 「러시아 연해주 한인 마을 연추의 형성과 초기 모습」(『동북아역사논총』25, 동북아역사재단, 2009)
  • 반병률, 「러시아 원동 지역 초기 한인 마을 형성과 러시아의 정책에 대한 재해석」(『역사문화연구』40, 한국외국어대학교 역사문화연구소,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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