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 항목명 | Путиловк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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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六城村 |
영문 | Putsilovka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러시아 연해주지방 푸칠로브카 |
시대 | 근대/개항기|근대/일제 강점기 |
원어 항목명 | Путиловк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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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한인마을 |
개항기 이후 1937년까지 러시아 연해주 남부에 있던 재러 한인 정착 마을
육성촌의 러시아명 푸칠로브카(Путиловка)는 러시아 관리 푸틸로의 이름을 딴 것이다. 한인들이 푸칠로브카 마을을 육성촌(六城村)이라고 부른 이유는 마을 옆 강의 이름, 즉 ‘6개의 지류를 가진 강‘이란 뜻의 류치헤자[六汊河子][현재의 카자취카 강]에서 따온 것이다.
육성촌을 초기에 개척한 한인들은 숲을 개간하여 집을 마련했지만 여전히 식량이 부족했다. 러시아 당국으로부터 조, 감자, 옥수수 등의 종자를 받아서 파종을 하였다. 1870년 러시아 당국은 땅의 경작을 위한 소 한 쌍을 육성촌에 제공하여 땅을 개간할 수 있게 하였다. 또한 파종용 종자 구입을 위한 자금을 지원했다. 한인들은 이 자금으로 국경 지대 중국 마을인 산차거우[三岔口]의 중국인들로부터 종자를 구입했다. 육성촌의 한인들은 가을에 수확한 곡식 중에 남은 것을 판 자금으로 소와 말을 기르며 점차 안정적인 생활을 영위해 갔다. 한인들은 두고 온 고향 사람들에게 성공적인 정착과 안정된 생활에 대한 소식을 전했다. 그 결과 육성촌의 주민 수가 늘어났다. 1869년 정착 당시 10가구에 불과했던 주민이 1년 만에 70가구로 늘어났다. 이후 새로운 이주자들이 계속 증가하면서 강의 양쪽에 4개의 촌락군이 형성되었다. 류치헤자강의 서쪽, 즉 상류 지역에 위치한 상소(上所)로부터 동쪽으로 중소(中所), 관소(官所), 하소(下所)로 불렸다. 1878년에는 측량 기사가 파견되어 육성촌과 다른 한인 마을들 간의 경계가 지어졌다.
육성촌이 들어선 분지는 원래 사람이 살 수 없는 잡림으로 뒤덮인 황무지였다. 최초의 이주자들은 매년 분지를 뒤덮고 있는 나무들을 다 베어 내고 주택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