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성촌

원어 항목명 Путиловка
한자 六城村
영문 Putsilovka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러시아 연해주지방 푸칠로브카  
시대 근대/개항기|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원어 항목명 Путиловка
성격 한인마을
정의

개항기 이후 1937년까지 러시아 연해주 남부에 있던 재러 한인 정착 마을

개설

육성촌은 ‘추풍4사’ 가운데 하나였다. 1890년대에 제작된 『아국여지도(俄國輿地圖)』에 의하면 육성촌의 마을 규모는 동서 12㎞[30리], 남북 약4㎞[10리]이며 인구는 2,827명에 달하는 큰 마을이었다. 재소한인 문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조명희가 망명하여 처음 온 곳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명칭 유래

육성촌의 러시아명 푸칠로브카(Путиловка)는 러시아 관리 푸틸로의 이름을 딴 것이다. 한인들이 푸칠로브카 마을을 육성촌(六城村)이라고 부른 이유는 마을 옆 강의 이름, 즉 ‘6개의 지류를 가진 강‘이란 뜻의 류치헤자[六汊河子][현재의 카자취카 강]에서 따온 것이다.

형성 및 변천

육성촌을 초기에 개척한 한인들은 숲을 개간하여 집을 마련했지만 여전히 식량이 부족했다. 러시아 당국으로부터 조, 감자, 옥수수 등의 종자를 받아서 파종을 하였다. 1870년 러시아 당국은 땅의 경작을 위한 소 한 쌍을 육성촌에 제공하여 땅을 개간할 수 있게 하였다. 또한 파종용 종자 구입을 위한 자금을 지원했다. 한인들은 이 자금으로 국경 지대 중국 마을인 산차거우[三岔口]의 중국인들로부터 종자를 구입했다. 육성촌의 한인들은 가을에 수확한 곡식 중에 남은 것을 판 자금으로 소와 말을 기르며 점차 안정적인 생활을 영위해 갔다. 한인들은 두고 온 고향 사람들에게 성공적인 정착과 안정된 생활에 대한 소식을 전했다. 그 결과 육성촌의 주민 수가 늘어났다. 1869년 정착 당시 10가구에 불과했던 주민이 1년 만에 70가구로 늘어났다. 이후 새로운 이주자들이 계속 증가하면서 강의 양쪽에 4개의 촌락군이 형성되었다. 류치헤자강의 서쪽, 즉 상류 지역에 위치한 상소(上所)로부터 동쪽으로 중소(中所), 관소(官所), 하소(下所)로 불렸다. 1878년에는 측량 기사가 파견되어 육성촌과 다른 한인 마을들 간의 경계가 지어졌다.

자연환경

육성촌이 들어선 분지는 원래 사람이 살 수 없는 잡림으로 뒤덮인 황무지였다. 최초의 이주자들은 매년 분지를 뒤덮고 있는 나무들을 다 베어 내고 주택을 지었다.

현황

현재 푸칠로브카에는 러시아인 가정 500호 정도가 살고 있다. 카프 시인 조명희가 1928년 망명 후 교편을 잡았던 육성농업학교 건물이 지금도 그대로 남아 교사(校舍)로 사용되고 있다. 육성농업학교는 과거 소비에트 혁명 시절에는 병원으로 사용되었다. 현재는 길 왼편에 신축 교사가 들어서 고학년[5~11학년]이 사용하고 우측의 구(舊) 교사는 저학년[1~4학년]이 사용 중이다. 구 교사 뒷마당에 연자방아 맷돌 4기가 양호한 상태로 보전되어 있다.

참고문헌
  • 『국외 독립운동 사적지 실태 조사 보고서-2000~2001년도: 중국 만주 지역·러시아 원동 지역·미국 지역』(국가보훈처, 2001)
  • 반병률, 「러시아 원동 지역 초기 한인 마을 형성과 러시아의 정책에 대한 재해석」(『역사문화연구』40, 한국외국어대학교 역사문화연구소, 2011)
관련항목
이전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