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한촌

원어 항목명 Новая корейская словодка
한자 新韓村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러시아 연해주지방 블라디보스토크시  
시대 근대/개항기|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911년
증설|폐설 시기/일시 1937년
원어 항목명 Новая корейская словодка
성격 한인마을
정의

1911년 러시아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시 개척리에 살던 한인들이 시 외곽 산기슭으로 이주당해 건설한 한인 마을.

개설

블라디보스토크시의 한인 밀집 거주 구역으로 러시아 한인 사회의 구심점인 동시에 일제하 해외 독립운동의 중심 기지 역할을 했던 마을이다.

형성 및 변천

1911년 봄에 콜레라를 이유로 개척리 한인촌이 철폐되면서 블라디보스토크 시 외곽[현재는 블라디보스토크 시 중심 지역]에 새롭게 한인 집단 거주지를 만들었다. 개척리에서 쫓겨난 한인들은 새롭게 통나무로 러시아풍의 작은 집을 짓고 신한촌을 건설하였다. 신한촌의 중앙에는 개척리에서 이전해 온 한민학교 건물을 세웠다. 신한촌 건설 직후인 1911년 9월경 일제 기록에 의하면 신한촌에 신축된 가옥은 모두 204채로 한 채에 한 가구 혹은 두세 가구가 동거하고 있었다고 한다. 한인 주민 수는 약1만 명이었다. 1910년대 초기 한인 활동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권업회의 본부를 비롯해 권업신문사 모두 신한촌 내에 있었다. 저명한 독립운동가들이 모두 신한촌에서 활동을 하였다. 의병 계열의 이범윤, 홍범도, 유인석, 이진룡, 전제익, 허근뿐만 아니라 국내외에서 애국 계몽 운동을 주도하던 인물들도 신한촌에서 활동을 하였다. 이상설이위종, 이동녕, 정순만 등도 신한촌에서 활동하였다. 미주에서 공립협회와 국민회를 조직하여 활동한 정재관이강, 김성무 등도 신한촌에 와서 활동했다.국내에서 신민회를 조직해 활동하던 안창호, 이종호, 이갑, 조성화, 유동열 등도 신한촌에서 활동했다. 민족주의 역사가이자 언론인인 박은식과 신채호도 합세하였으며, 기독교계의 이동휘와 대종교의 백순 등도 신한촌에 들어왔다. 망명한 독립운동가들은 연해주 한인 사회의 지도급 인물들인 최재형, 최봉준, 문창범, 김학만 등과 합세하여 1910년대 국내외의 독립운동을 주도하였다.

자연환경

신한촌이 형성되었던 곳은 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시 중심부 서북쪽의 아무르만 연안 언덕 일대이다.

현황

1937년 강제 이주로 완전히 폐허가 되었다가 현재는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 있다. 신한촌의 유일한 흔적으로 ‘서울스카야 2A’ 번지 문패가 붙은 러시아식 주택 한 채가 남아 있다. 이동휘 말년 거주지, 독립문 위치 등이 고증을 통해 확인된 상태이며, 1999년에 설립한 ‘신한촌 기념비’가 신한촌 위치 북쪽에 있다.

참고문헌
  • 『국외 독립운동 사적지 실태 조사 보고서-2000~2001년도: 중국 만주 지역·러시아 원동 지역·미국 지역』(국가보훈처,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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