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지미

원어 항목명 Сидими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러시아 연해주지방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866년
개칭 시기/일시 1972년
원어 항목명 Сидими
원어 주소 Россия, Приморский край хасанский район
성격 한인마을
인구[남/여] 1,245명[1898년 최대 인구]
정의

1866년 러시아 연해주에 형성된 재러 한인의 정착 마을.

명칭 유래

시지미라는 마을 명칭은 시지미라는 강의 명칭에서 유래했다. 시지미라는 단어가 처음으로 등장한 것은 1861년으로 당시에는 니지미(Нидзими)로 표기되었다. 이후 시지미(Сидими), 세지미(Седими), 세제미(Седеми), 시제미(Сидеми) 등으로 다양하게 표기되기도 했다. ‘니’라는 표기가 ‘시’로 바뀐 것은 1864년이었다. 이때부터 ‘시지미’로 불렸다. 1880년대에 들어서 ‘지(Дзи)’가 ‘지(Ди)’로 바뀌면서 현재와 같은 철자로 규정되었다. 이후에도 시데미시지미가 혼용되다가, 1908년에 들어서야 시지미라는 이름만이 사용되었다. 1972년 러시아소비에트공화국 최고회의 간부회의 결정에 따라 시지미라는 강의 이름이 나르바로 변경되었으며, 시지미라는 마을은 베즈베르호보(Безверхово)로 이름이 바뀌었다.

형성 및 변천

시지미 마을은 1866년 러시아 연해주 포시예트 구역에서 형성되었다. 행정적으로 두 개의 독립된 촌락이 형성되었지만 재러 한인 농민들은 자신의 촌락이 통일된 하나의 마을이라고 여겼다. 시지미 강의 계곡을 따라 펼쳐진 작은 부락들인 남가체기, 북가제기, 헤지미, 주첸고우, ‘케드로바야 골[삼나무 골]’ 역시 시지미의 일부로 여겨졌다. 이들 마을로부터 좀 더 떨어진 졸로토이 클류치(Золотой Ключ)라는 개천 근처의 작은 마을 역시 시지미에 포함시켰다. 1911년을 기준으로 이 마을에는 한인 세 가족이 살고 있었으며, 수십 명의 한인들이 사금 캐는 일에 종사하고 있었다. 시지미에 사는 한인들의 주업은 농업이었다. 주요 경작물로는 수수, 피, 대두, 옥수수, 채소 등이었으며, 군사 도시인 바라바시(Барабаш)에 판매할 목적으로 귀리를 재배하기도 하였다. 베르흐네예[상(上)]시지미는 가장 규모가 큰 재러 한인 마을로서, 1898년부터 교구 학교가 있었으며, 약 120명의 학생들이 수학하였다. 당시 인구는 최대 1,245명에 달하였다.

소비에트 정권이 들어서면서 시지미에 시지미, 베르흐네예시지미, 우스티시지미 등 총 3개의 농촌 소비에트가 형성되었으며, 노동자 조합과 집단 농장이 등장하였다. 1937년의 강제 이주 이후 한인 마을이 비게 되면서, 우스티시지미에 노동자 마을이 형성되었고, 집단 농장 ‘볼셰비크’, 사슴 농장 ‘시지미’ 등이 배치되었다.

자연환경

시지미는 강을 따라 작은 부락과 농경지가 형성되었다.

현황

1972년 명칭이 변경되면서 시지미라는 재러 한인 마을은 지도에서 사라지게 되었고, 마을 이름은 베즈베르호보로 개명되었다.

참고문헌
  • 박환, 『사진으로 보는 러시아지역 한인의 삶과 기억의 공간』(민속원, 2013)
  • 반병률, 「러시아 연해주 한인 마을 연추의 형성과 초기 모습」(『동북아역사논총』25, 동북아역사재단, 2009)
이전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