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코프

원어 항목명 Быков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러시아 사할린주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상세정보
원어 항목명 Быков
인구[남/여] 3,786명[2013년]
정의

일제 강점기 사할린 한인들이 탄광에 강제 동원되었던 러시아 사할린주 돌린스크 지역의 마을.

개설

남사할린의 일본 점령기에 한인들의 강제 동원이 가장 많았던 탄광이 있던 마을이다.

명칭 유래

러일 전쟁 당시 사할린에서 일본군을 상대로 전과를 세웠던 바실리 페트로비치 비코프(Василий Петрович Быков)의 성을 딴 것이다.

형성 및 변천

1915년 남나이부치, 북나이부치 마을이 형성되었다. 1923년 남나이부치, 북나이부치를 통합하여 오치아이시[현재 돌린스크시]가 형성되었다. 1943년 일본, 가라후토 내지로 편입, 북해도에 속하게 되었다. 1943년 8월 나이부치[内淵] 인조 석유 전용선 개통과 동시에 나이부치역이 개통되었다. 1945년 2월 얄타 회담에서 남사할린 지역 소련 반환에 합의하였다. 1945년 3월 나이부치 인조 석유 전용선이 제국 연료 흥업 주식회사에 합병되었다. 1945년 8월 22일 소련이 남사할린을 점령하고 국경을 봉쇄하였다. 1946년 소련에 의해 남사할린과 쿠릴 제도에 법령이 시행되어, 비코프로 개칭되었다. 1949년 일본 가라후토청이 폐지되었다.

자연환경

비코프 마을 위치는 47°19'09"N 142°33'54"E, 유즈노사할린스크로부터 42.9㎞ 거리에 있다. 나이바강 유역에 있다.

현황

미쓰비시[三菱]광업주식회사 소유였던 나이부치 탄광은 나이부치 계곡을 기준으로 두 개로 나눠졌다. 제1 탄광은 하구에서 본류로 약 5㎞를 거슬러 올라가는데 약 170m 규모의 19개의 질 좋은 광맥이 분포하고 있었다. 다시 4㎞ 정도 올라간 곳에는 제2 탄광이 있었는데, 제2 탄광의 탄층은 36개 정도로 광맥의 규모도 300m나 되어 제1 탄광을 능가했다. 나이부치 자체는 세 지구로 나뉘었다. 회사와 탄주, 송탄장 등이 있었던 나이부치와 이를 중심으로 하여 채굴의 중심지였던 니시나이부치, 그리고 석탄에서 기름을 뽑아내는 공장이 있던 남쪽 지역이다.

나이부치 탄광은 일본 점령 시기 한인들이 탄광 노동자로 가장 많이 끌려간 곳이다. 한인들을 모집할 때 나이부치 제국연료주식회사의 이름을 내세워 모집하면서 ‘고급 기술을 익힐 수 있는 기회’인 양 포장하였지만, 석탄으로부터 항공기용 휘발유를 만드는 탄광에 배치하였다. 여러 생존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노동자 숙소에 해당하는 나이부치 코산료[興山寮]는 한인으로만 구성되어 300여 명의 한인이 수용되었고, 니시나이부치에는 시세이료[至誠寮] 등 6개의 한인 노동자 기숙사에 1,000명 이상의 독신자들이 수용되었다고 한다. 니시나이부치에는 다꼬베야[징벌방을 말하는 것으로 도망 또는 근무 태만자를 징벌하는 방으로 이곳에 들어간 사람은 거의 반죽음이 되어 나왔다고 한다.]까지 설치되어 있었다. 고향에 돌아가지 못한 채 고향에 있는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기 위해 함께 있던 같은 고향 사람이거나 친한 한인들끼리 ‘형제 서약서’를 만들어 가슴에 품고 다녔다고 한다. 이 ‘형제 서약서’는 비코프 한인 회장 출신인 안해준이 국립일제강제동원역사관에 기증했다. 일본에서 귀환 운동을 펼친 박노학, 이희팔이 만난 곳이 바로 나이부치 탄광, 즉 비코프이다.

사할린주 노인회 박해동 회장, 임판개 부회장의 증언에 의하면 소련이 점령할 시기 일본인들이 한인들의 집단 학살 계획을 꾸몄으나 실패했다고 한다. 일본인 탄광 간부 일부가 한인들을 갱 안에 몰아 넣고 폭발시키기로 했으나 탄광 안전부장 노지마가 이를 한인들에게 알려 참변을 면했다고 한다[혹자는 소련군이 일본인들의 거사일 3일 전에 나이부치 탄광을 점령하여 화를 피했다고 증언하기도 한다].

소련 점령 이후 비코프 탄광으로 잘 알려져 있으나 정식 명칭은 ‘돌린스크 탄광[Шахта Долинская]’이다. 1980년대까지도 하루 채탄량이 2,000톤이 넘었고 소련 시대에 약 만여 명[한인 3,000명] 정도가 살던 곳이었다. 2007년 중국 자본에 탄광이 팔리기도 했으나 결국 탄광은 폐쇄되었다. 2017년 KIN[지구촌동포연대] 방문 시 작업장으로 들어가는 철로까지 고철로 팔아 버려 갱으로 들어가는 입구라는 흔적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한인들은 100여 명이 거주하고 있고 한인 1세는 6명이라고 비코프 한인회 이경숙 회장이 밝혔다.

참고문헌
  • 『검은 대륙으로 끌려간 조선인들』(일제강점하강제동원피해진상규명위원회, 2006)
  • 『“사할린, 사할린 한인” 구술 자료집』(지구촌동포연대,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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