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보스토크

원어 항목명 Владивосток
한자 海蔘威
영문 Vladivostok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러시아 연해주지방 블라디보스토크시  
시대 근대/개항기|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874년
변천 시기/일시 1911년
원어 항목명 Владивосток
인구[남/여] 606,589명[2017]
정의

1937년 강제 이주 이전 재러 한인들의 중심지이자 러시아 연해주의 중심지.

개설

신한촌을 비롯해서 한인들이 모여 사는 마을이 많았다. 한인들의 중심지이자 권업회 등 한인 독립운동의 중심지다.

명칭 유래

블라디보스토크는 정복하라라는 의미의 ‘블라디(влади)’와 동쪽이라는 뜻이 ‘보스토크(восток)’가 합쳐져 ‘동방을 정복하라’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명칭이다.

형성 및 변천

블라디보스토크는 러시아인이 1856년에 발견하여 군항으로 지정하고 개발하기 시작하였다. 한인이 블라디보스토크에 들어와 개척리를 일구기 시작한 것은 1874년이다. 개척리는 1911년 러시아 당국이 콜레라 감염 방지를 이유로 신한촌으로 옮기기 전까지 지속되었다. 1911년 한인들은 거주지를 신한촌으로 옮기면서 권업회, 한민학교 등을 세웠다. 이로써 신한촌은 민족 운동의 중심지 기능을 수행했다. 1920년 일본군에 의한 연해주 4월 참변이 벌어지면서 친일적 조선인거류민회(朝鮮人居留民會)가 세워졌다. 1922년 10월 빨치산 부대에 의해 블라디보스토크는 일본으로부터 해방되었다. 이후 한인들은 소비에트 건설에 매진했지만 1931년 블라디보스토크 고려사범대학, 1932년 고려극장을 세우면서 민족 문화를 유지해 나갔다. 1937년 한인들은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되면서 신한촌은 폐허가 되었다.

1991년 소비에트가 해체된 후 강화되는 민족주의를 피하고 새로운 기회를 찾기 위해 고려인들은 블라디보스토크를 포함한 연해주 지역으로 재이주를 하고 있다.

자연환경

지리적으로 시베리아 횡단 철도의 종점이며 남쪽부터 북쪽으로 갈수록 구릉 지대가 펼쳐진다. 남쪽에는 금각만과 루스키섬이 있다. 몬순 기후이며 평균 온도가 1월에는 -14℃, 8월에는 +24℃로 연평균 온도가 +5℃이다.

현황

현재 블라디보스토크에는 한인 유적지와 관련하여 신한촌 기념비, 블라디보스토크 고려사범대학 건물, 조명희 문학비 등이 남아 있다. 주블라디보스토크 대한민국 총영사관, 한국교육원 등의 기관이 있다. 1998년 기준으로 2,000여 명의 고려인이 거주하고 있다.

참고문헌
  • 이채문, 『동토의 디아스포라』(경북대학교 출판부, 2007)
  • 『국외 독립운동 사적지 실태 조사 보고서-2000~2001년도: 중국 만주 지역·러시아 원동 지역·미국 지역』(국가보훈처, 2001)
  • 『러시아·중앙아시아 한인의 역사』(국사편찬위원회, 2008)
  • 박환, 『러시아 지역 한인의 삶과 기억의 공간』(민속원, 2013)
  • 반병률, 「러시아 원동 지역 초기 한인 마을 형성과 러시아의 정책에 대한 재해석」(『역사문화연구』40, 한국외국어대학교 역사문화연구소, 2011)
  • 계봉우, 「아령실기」(『독립신문』, 1920. 2. 20~1920. 4.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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