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즈호

원어 항목명 Пожарское на Сахалине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러시아 사할린주 홀름스크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상세정보
러시아 사할린주 홀름스크 구역
원어 항목명 Пожарское на Сахалине
원어 주소 Россия, Сахалинская область Холмский городский округ
성격 마을
인구[남/여] 79명 [2013년]
정의

1918년 이후 러시아 사할린주 홀름스크 지역에 형성되었던 농촌 마을.

개설

러시아 사할린주 홀름스크에서 유즈노사할린스크로 가는 길목에 있던 마을이다. 1945년 8월 일본인 자경단에 의해 여자, 아이를 포함한 사할린 한인 27인이 학살된 곳이다.

일본은 가라후토청을 만들고 농업 이주를 장려했지만, 초기에 기대에 못미치자 1918년 강력한 이주 장려 정책을 실시한다. 이주비와 개간비를 보조하고, 농업 개척자를 수용할 지정지를 발표하였는데, 미즈호촌도 이즈음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특히 도요하라[유즈노사할린스크]~마오카[홀름스크]간 철도 건설이 1916년 승인되었는데, 시미즈 마을 등 평야와 농목지가 많은 농촌 부락을 연결하는 것으로 계획되었다.

미즈호촌은 도요하라[유즈노사할린스크]~마오카[홀름스크]간 철도 노선인 풍진선(豊眞線)의 후타마타[二朌]역에서 약 9㎞ 떨어진 거리에 있었다. 마을은 경찰, 학교 교장, 부호 등이 거주했던 1지구와 미즈호촌 외곽 지역인 2지구가 있었다. 27인 추모비는 2지구 추정 지역에 가깝다.

1945년에 미즈호촌에 거주하고 있던 한인들은 일본인들에게 고용된 농민들과 관개시설 공사를 위해 들어온 노동자들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1지구에 일본인들과 거주한 한인들은 일본인들과 신뢰 관계가 아주 높았던 것으로 보인다. 1945년 8월 20일. 소련군이 마오카[홀름스크]에 상륙하여 도요하라[유즈노사할린스크]로 진격하는 상황에서 마을 주민들은 긴급 대피에 나섰다. 하지만 재향군인회와 청년단 대표 등에 의해 조선인 말살 계획이 모의되었고, 1945년 8월 20일부터 살해 사건이 발생되었다. 1945년 8월 22일에는 2지구에서 집단적인 살해 사건이 벌어졌고 25일까지 이어졌다. 이유는 조선인이 ‘스파이’ 활동을 하였다는 것이었지만 근거는 전혀 없었다. 어제까지 이웃이었던 마을의 조선인들을 거의 몰살시켰다. 여성 3명, 생후 6개월에서 12살의 어린이 6명도 살해되었다.

명칭 유래

미즈호는 일본 점령 시기 마오카[현 홀름스크] 지청에 소속된 마오카군 노다정 시미즈촌에 속한 작은 마을이다. 미즈호[瑞穂]라는 뜻은 본래 싱싱한 벼이삭이라는 뜻으로, 일본의 고대 이름이기도 했다. 이곳이 농업을 위한 식민지 구획지이기 때문에 이러한 명칭이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형성 및 변천

1915년 시미즈 마을, 마오카[현 홀름스크] 지역 소속 마오카 지청 관할이 되었다. 미즈호촌은 시미즈 마을에 속한 촌이었다. 1929년 사할린 정촌제 시행으로 시미즈 마을[清水村]은 지정 읍면이 되었다. 1943년 일본은 사할린가라후토 내지로 편입하였다. 미즈호촌 정착 호수 175호였다. 1945년 8월 22일 소련이 남사할린을 점령하여 국경을 봉쇄하였고, 미즈호촌에서 조선인 학살 사건이 발생하였다. 1946년 포자르스코예(Пожарское)로 개칭하였다. 1949년 일본이 마오카청, 시미즈 마을을 폐지하였다.

자연환경

북위 46 ° 53 '53", 동경 142 ° 17 '40"지점인 홀름스크와 시네고르스크, 유즈노사할린스크 사이에 있다. 류토기(Лютоги)라는 작은 개천이 있고 행정 구역으로는 홀름스크에 속한다.

현황

미즈호 학살 사건은 1946년 소련군의 조사와 재판으로 드러났다. 미즈호 학살 사건은 마을에서 지도자 급의 인물들이 주도하였는데, 전시 상황에서 마을에서도 영향력이 큰 퇴역 군인 출신들이 재향군인회와 쳥년단을 지휘하여 벌어졌다. 암매장되었던 피해자들을 확인한 소련군의 기록에 따르면, 피해자들이 매우 잔혹하게 살해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소련군정의 재판에서 피의자들 중 7명은 사형, 11명은 교화노동수용소 10년형을 언도받았다. 사형은 1947년 2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집행되었고, 10년형을 마친 자들을 포함 6명이 일본으로 송환된 것이 확인되었다. 포자르스코예 인근 퍄티레치예에서 중학교 역사 교사를 지낸 가포넨코에 의해 재판 기록 등이 알려졌고, 조선인 강제 동원 등을 주로 취재한 일본의 하야시 에이다이도 미즈호 살인 사건을 추적하였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2005년 사할린 거주 이국진이 일제강점하강제동원피해진상규명위원회에 ‘사할린 미즈호 조선인 학살 사건 진상 조사’를 신청하였고, 위원회가 진상 조사를 결정하면서 이루어진 조사 결과가 2008년도에 발표되었다.

참고문헌
  • 하야시 에이다이, 『증언-사할린 조선인의 학살 사건』(반민족문제연구소 옮김, 계명문화사, 1991)
  • 『사할린 미즈호 조선인 학살 사건 진상 조사』(일제 강점하 강제동원피해 진상규명위원회, 2008)
  • 콘스탄친 가포녠코, 『사할린 미즈호 마을의 비극』(장한나 옮김, 새문사,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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