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야 | 지리/인문 지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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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러시아 연해주지방 |
시대 | 근대/개항기|근대/일제 강점기 |
개설 시기/일시 | 1888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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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한인 마을 |
다우지미[大烏吉密] 마을은 1888년에 형성되었다. 다우지미 마을을 만든 사람들은 본래 1884년 예카테리노브카를 개척했던 한인들이었다.
예카테리노브카를 개척한 한인들은 이 땅을 러시아인들에게 넘겨주고 1888년경 다우지미로 이전했다. 1895년 당시 다우지미 마을에는 24호의 한인들이 거주했다. 그런데 당시 러시아의 토지측량위원회는 다우지미 주민들에게 일정 범위 이상 개간한 토지를 노볼리토브스카 마을의 러시아 농민들에게 넘겨주라는 명령을 내렸다. 일정 범위 이상 개간한 토지를 소유하지 못하게 한 러시아 당국의 명령으로 인해 다우지미 마을 주민들의 많은 수가 제대로 된 땅을 갖지 못하였다. 매우 궁핍한 생활을 했던 다우지미 마을 사람들은 계속해서 황무지를 찾아 힘들게 개간할 수밖에 없었다. 1906년 무렵 다우지미 마을에는 776명의 한인들이 살았다. 1911년에는 다우지미 마을에 권업회 지방총회 2곳이 생겼다. 당시 다우지미 지방총회는 회장 박춘성과 서기 박창극 그리고 김기옥, 김영준 등이 이끌었다. 권업회의 활동을 통해 1913년 다우지미 마을에 소학교가 생겼고, 1919년 이후 다우지미 마을은 항일 빨치산 활동의 근거지가 되기도 했다.
다우지미 마을이 있던 지역은 나훗카 정북방으로 20㎞ 정도 떨어진 미하일로브카 마을 부근으로 추측된다. 마을이 사라진 지 오래라 현재는 황무지로 방치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