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항

원어 항목명 Николаевск-на-Амуре
한자 尼港
영문 Nikolaievsk-na-Amure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러시아 하바롭스크지방 니콜라옙스크나아무레시  
시대 근대/개항기|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850년 8월
개칭 시기/일시 1926년
원어 항목명 Николаевск-на-Амуре
인구[남/여] 19,135명[2017]
정의

러시아 하바로프스크주에 있는 대표적인 한인 이주지 중 하나이자 니항 사건이 일어난 장소.

개설

니항(尼港), 즉 니콜라예프스크는 1850년 극동 지역에서 최초로 건설된 도시이다. 하바롭스크로부터 북동쪽으로 977㎞ 떨어진 아무르강 하류의 작은 항구 도시다. 1926년 니콜라예프스크나아무레로 개칭되었다.

형성 및 변천

1850년 8월 겐나디 니콜라예비치 네벨스키 장군이 아무르 지역 점령을 위해 군사 행정 중심지로서 개척하였다. 이후 니콜라예프스크는 주변에 금광이 발견되었고 미국, 일본 등의 상선이 출입하기 시작하면서 러시아 극동 지역의 산업과 상업 중심지로 발전했다. 1917년 도시 주민의 수는 15,000명에 달했다. 1919년 1월 당시 니콜라예프스크항의 총인구는 12,248명이었으며 이 중 한인은 300가호 918명이 거주하고 있었다. 거주 한인들은 주로 농업과 상업에 종사하였다. 주변의 금광으로 일을 찾아온 노동자들이 5,000~6,000명에 달하였다. 1919년 1월 조사에 따르면, 중국인은 2,329명, 일본인은 291인이 거주하고 있었다.

니콜라예프스크항은 1918년 9월 시베리아에 출병한 일본군 보병 1대대를 기간으로 하는 수비대가 배치되었다. 또한 당시 니콜라예프스크 항구에는 얼어붙은 강물 떄문에 중국 군함 4척이 정박하여 있었다. 50명으로 축소된 백위파군이 병력 보충을 위해 조직한 자경단에는 중국인이나 한인들은 전혀 참여하지 않았고 일본인들만 참여하였다.

1920년 1월 중순 이래 많은 백군이 이탈하여 일본군이 사실상 수비와 치안을 담당했다. 1월 11일부터 일본군 수비대는 니콜라예프스크 항구 주변 지역에 출동하여 빨치산군과 교전했다. 2월 28일 일본군 수비대는 러시아 빨치산 부대와 평화 협정을 체결했다. 그러나 1920년 3월 12일 밤 일본군의 기습으로 전투가 벌어졌고 여기서 일본군은 참패하였다. 러시아 빨치산 부대는 일본의 원군이 도착하기 전에 1920년 5월 24일~5월 25일 감옥에 남아 있는 130명의 일본인들을 처형하였다. 이어서 5월 30일부터 6월 2일까지 니콜라예프스크시를 방화하고 철수하였다.

자연환경

니항은 아무르강 하구에서 약 60㎞ 상류 지점에 있다. 아무르강 수운과 해양 교통의 접점 지역으로 암군(амгунь) 강변의 채금 사업이 발달하며 블라디보스토크에 버금가는 상업 항구로 발달했다. 또한 니항은 오호츠크 해안의 어업 중심지로서 선박의 출입이 잦아 교통이 편리한 편이어서 한인 거주자들이 많았다.

현황

니항 사건 때 시내가 불타며 한인 마을도 폐허가 되었다. 그러나 당시 러시아 빨치산 본부의 건물이 보존되어 있으며 현재 경찰서로 사용중이다. 니콜라예프스크 박물관에는 니항 사건과 관련된 빨치산들의 사진 및 발해 유적, 한인들이 사용하던 맷돌과 절구, 한인 거류민회에서 발행한 영수증 등이 남아 있다.

참고문헌
  • 『국외 독립운동 사적지 실태 조사 보고서-2000~2001년도: 중국 만주 지역·러시아 원동 지역·미국 지역』(국가보훈처, 2001)
  • 반병률, 『1920년대 전반 만주·러시아지역 항일무장투쟁』(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2009)
  • 윤상원, 「러시아 지역 한인의 항일 무장 투쟁 연구(1918~1922)」(고려대학교 박사 학위 논문,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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