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6년과 1867년 조선에서 대규모의 사람들이 지신허로 월경 이주를 했다. 1866년 12월 경원부 백운동 주민 15가구 75명이 두만강을 떠나 이동하는 백운동 사건과 1867년에는 경흥 하삼동 사람들이 지신허로 이주를 준비하다 관청에 발각되는 하삼동 사건이 이때 벌어진 대표적인 월경 이주 사건이다. 백운동과 하삼동 사건에서 보듯 조선의 북쪽 국경 지대 농민들이 점차 지신허로 이주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1863년 13가구로 시작한 지신허 마을은 1864년 30가구 140명, 1885년 65가구 343명, 1866년 100여 가구가 사는 마을로 크게 성장했다. 1867년에는 500명, 1868년 900명의 주민들이 국경을 넘었다. 1884년 한국과 러시아가 경흥개시조약을 체결되어 러시아로 이주할 자유가 생기게 되었다. 이런 분위기를 타고 많은 사람들이 지신허 마을로 이주했다. 지신허 마을로 많은 사람들이 유입되자 자연스럽게 지신허 주변의 남부 우수리 각 지역에도 한인 마을이 생기기 시작했다. 남석동 마을도 이런 분위기를 타고 만들어진 마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