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리예프

원어 항목명 Гурьев
영문 Guriev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카자흐스탄 아티라우주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상세정보
원어 항목명 Гурьев
정의

카자흐스탄 서부 카스피해 연안의 도시명 및 주명.

개설

1991년까지 불렸던 도시 및 주의 이름으로 현재의 이름은 아티라우이다. 카자흐스탄 자치공화국이 1936년에 소련을 구성하는 구성공화국으로 승격된 이후 1938년에 구리예프주가 형성되었고, 주도는 구리예프였다. 1937년 가을 재러 한인 강제 이주 당시 해안가에 위치한 구리예프시에 재러 한인 이주자들이 배치되었다.1938년 초의 통계에 의하면 어업 종사자를 포함하여 모두 1,284세대가 거주했다. 구리예프주 지역은 토양에 염분이 많아 농사 짓기에 부적합했고, 어업 활동에도 한계가 있어서 고려인들은 다른 지역으로 이주시켜 줄 것을 부단히 요청하였다. 결국 이들 중 500세대 정도는 어업 활동에 적합한 도시인 러시아 공화국의 아스트라한 지역으로 재배치되었다. 아스트라한으로 재배치된 고려인들은 독일과의 전쟁이 개시된 1941년 말에 카자흐스탄 공화국의 내륙 지역인 아크몰라 지역[현 카자흐스탄의 수도인 아스타나가 있는 지역]으로 재이주되었다.

명칭 유래

17세기 중엽 러시아의 무역상인 구리 나자로프가 활동하던 지역이라는 뜻에서 명칭이 유래하였다.

형성 및 변천

17~18세기 당시에 구리예프 지역은 카자크족의 침입이 빈번하였고, 구리예프는 한때 완전히 파괴되기도 하였다. 1708년에 제정 러시아의 군대가 진출하여 도시를 재정비하면서 그 도시를 구리예프라고 하였다. 러시아의 도시로 발전했지만 카자흐인들이 많이 거주하였다. 20세기 초에 카자흐공화국 영역으로 확정됨에 따라 카자흐인들이 부르는 아티라우라는 명칭이 생겨났다. 1991년까지 구리예프라는 명칭이 아티라우와 함께 사용되었다.

자연환경

카스피해를 남쪽에 두고 있는 초원 지대로, 농업에는 부적합한 곳이다. 지리적으로 중앙아시아와 러시아를 연결하는 곳이다.

현황

현재 아티라우[구리예프]는 카자흐스탄의 원유 개발의 중심지로서 경제적으로 각광을 받고 있는 지역이며 고려인 공동체 또한 여전히 형성되어 있다. 아티라우에 거주하는 고려인들은 대부분 도시 노동자와 비즈니스에 종사하고 있다.

참고문헌
  • 박 보리스 드미트리예비치·부가이 니콜라이, 『러시아에서의 140년간-재러 한인 이주사』(김광환·이백용 옮김, 시대정신,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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