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 항목명 | Корейская слободк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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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開拓里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러시아 연해주지방 블라디보스토크시 |
시대 | 근대/개항기|근대/일제 강점기 |
개설 시기/일시 | 1874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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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천 시기/일시 | 1911년 |
원어 항목명 | Корейская слободка |
1874년 러시아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시에 형성된 재러 한인 마을.
1874년부터 1911년 신한촌 건설 이전까지 재러 한인들이 밀집 거주하던 블라디보스토크시의 한 구역이다. 을사조약과 한일 병합 전후 국외 항일 독립운동의 중추 기지 역할을 하였다. 개척리의 한인들은 한민회(韓民會)라는 자치기구를 운영하면서 공동체 생활을 영위했다. 신채호, 홍범도, 유인석 등이 개척리에서 활동했다. 또한 개척리에서는 민족 학교인 계동학교, 항일 언론 기관인 해조신문사, 대동공보사와 일제의 조선 강점에 반대하여 성명회 선언서를 발표한 성명회가 조직되기도 했다. 안중근 의사, 「시일야방성대곡」을 쓴 장지연이 활동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특히 개척리는 안중근 의사가 하얼빈 의거를 계획했던 곳이다.
개척리는 ‘개체기(Gechegi)’라고도 불렸는데 군항의 개척과 함께 마을이 이루어졌다는 뜻이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