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미시스카

원어 항목명 Камисиска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러시아 사할린주 레오니도보  
시대 현대/현대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905년 경
개칭 시기/일시 1946년
원어 항목명 Камисиска
원어 주소 Россия, Сахалинская область Поронайский городской округ село Леонидово
성격 마을
인구[남/여] 1070명 [2013년]
정의

1905년 경 일본이 개척한 러시아 사할린주 포로나이스크 지역의 마을로 1945년 18명의 조선인들이 학살당한 곳.

개설

일본 점령기 때 군사 도시로 발전한 탄광 마을이다. 일본군과 소련군의 교전 후 후퇴하던 일본군의 헌병과 경찰에 의해 조선인 18명이 학살당한 곳이다.

1940년까지만 해도 북쪽의 거대한 삼림 지대에서 벌채된 목재의 집산지로서 소규모 촌락이었던 카미시스카는 1941년 철도가 개통되면서부터 급격히 발전했다. 가라후토 혼성여단이 카미시스카에 신설되어 자리 잡은 이후 포병대, 제25연대, 공병대, 통신소 등이 잇달아 배치되었다. 이후 철도 노선 연장, 비행장 건설 등으로 인해 건설 하청업체들과 노동자들이 인근 지역으로 몰렸다. 1945년 8월 무렵에는 약 2,500여 호로 인구가 늘어날 정도였다. 카미시스카는 군 부대와 헌병대, 경찰서가 있는 시스카강 남부 지역과 민간인 거주지가 있는 카미시스카역 서쪽과 동쪽의 비행장, 북쪽의 신사 방향의 신개척지로 구성되어 있었다. 군사 도시의 특성상 출입이 엄격했는데, 당시 농업과 건설노동 일을 하는 조선인들은 헌병대와 특수정보부 화태지부 등의 정보 기관에 의해 통제되고 민병대나 소방대 등에 편제되어 통제와 감시를 받았다.

1945년 8월 17일 시스카 방면으로 피난을 가는 행렬을 일본의 경찰과 헌병이 검문하여 사할린 한인들이 카미시스카를 벗어나지 못하게 억류했다. 일본의 경찰과 현병은 8월 18일 경찰서 내 유치장에 있던 18명의 한인들을 사살하고, 사체 유기를 목적으로 경찰서를 방화했다.

명칭 유래

카미시스카의 시스카[敷香]는 아이누어로 ‘산 앞’이라는 뜻인 ‘시리 투카리 (sir-tukari)’에서 유래한다. 카미시스카의 러시아어 명칭 레오니도보(Леонидово)사할린 전투의 전쟁 영웅 레오니드 블라디미로비치 스미르니흐(Леонид Владимирович Смирных)를 기리기 위한 것이다.

형성 및 변천

1905년 남사할린이 일본에 편입되었고, 카미시스카가 탄광 마을로 개척되었다. 일본은 1915년 시스카 지청을 설치하였다. 카미시스카는 사스카 지청 관할 마을이었다. 1941년 사할린 동선(東線) 카미시스카역을 개통하였다. 카미시스카역은 일본 최북단의 역이다. 1943년 카미시스카역에서 케톤[현재 스미르니흐]까지 51.7㎞의 군용 단선 철도를 개통하였고, 1944년엔 스미르니흐역에서 코톤[현 포베지노 마을]까지 10.6㎞ 철도를 개통하였다. 아오모리현 해군 212부대가 주도하여 카미시스카 비행장을 완공하였다. 남사할린 카미시스카 비행장은 일본의 최북단 군용 비행장이었다. 1945년 8월 17일 전쟁에 패한 일본군에게 긴급 대피령이 내렸다. 일본군은 방화하며 후퇴하여 마을을 거의 전소시켰고, 사할린 한인 18명을 경찰서로 연행하여 학살하였다.

일본의 패전 후 소련은 남사할린을 점령하고 1945년 8월 22일 국경을 봉쇄하였다. 1946년 소련에 의해 남사할린과 쿠릴제도에 소연방법이 시행되고 카미시스카레오니도보로 개칭되었다. 1949년 일본은 가라후토청을 폐지하고, 시스카정도 폐지하였다.

자연환경

북쪽으로는 스미르니흐, 동쪽으로는 오호츠크해와 테르패니야만에 접한 포로나이스크 지역의 마을로 위치는 북위 49°17'08", 동경 142°52'54" 이다. 포로나이스크시로부터 서북쪽으로 약 20㎞ 지점에 레오니도보가 있으며 레오니도브카(Леонидовка)라는 강의 연안에 위치해 있다.

현황

소련 시기에는 탱크 대대, 공군 기지 등 국경 수비를 위한 부대들이 있었지만 현재는 모두 이전하고 마을은 축소되었다. 현재 경찰서 터로 추정되는 공터에 아버지 김경백과 오빠 김정대를 잃은 유가족 김경순이 사비를 들여 세운 통한의 비가 있다. 현재 이름은 레오니도보이다.

참고문헌
  • 하야시 에이다이, 『증언-사할린 조선인의 학살 사건』(반민족문제연구소 옮김, 계명문화사, 1991)
  • 『사할린 가미시스카 조선인 학살 사건 진상 조사』(일제강점하강제동원피해진상규명위원회, 2007)
  • 최상구, 『사할린, 얼어붙은 섬에 뿌리내린 한인의 역사와 삶의 기록』(일다, 2015)
  • 『새고려신문』(2015. 2. 13, 2015. 3.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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