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둔도

원어 항목명 Красное село
한자 鹿屯島
분야 지리/자연 지리
유형 지명/자연 지명
지역 러시아 연해주지방  
시대 현대/현대
상세정보
특기 사항 시기/일시 1875년
원어 항목명 Красное село
성격 한인 마을
정의

1875년 개척된 러시아 연해주 남부 우수리스크 지역의 한인 마을.

명칭 유래

녹둔도는 사슴을 지칭하는 말로 여진말로는 사차마(沙次亇), 사침마(沙沈麻)라고도 했다. 러시아어로는 녹둔도를 붉은마을 혹은 아름다운 마을이라는 뜻의 크라노스예 셀로(Красное село)라고 불렀다.

형성과 변천

녹둔도는 조선 시대 때 두만강 건너 조산보 만호의 관할 지역으로 조산의 군민들이 배를 타고 드나들며 농작물을 수확했던 곳이었다. 그러나 여진족들에 의해 자주 침입을 받게 되면서 사실상 조선 정부의 관심 밖에 방치된 곳이었다. 1860년 북경조약으로 연해주가 러시아의 영토가 되었다. 녹둔도를 한인들이 개척하기 시작한 시점에 대해서는 아직 설이 분분하다.「아령실기」에 따르면 1875년 경흥인, 홍석중이 녹둔도를 개척했다고 적고 있다. 다른 러시아 자료는 1880년에 한인 마을이 생긴 것으로 보고 있다. 자료를 정리하면 1875년 한인 마을에 대한 개척이 이루어지고, 1880년 러시아 당국으로부터 공식적으로 인정받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즉, 녹둔도는 1870년대 기근을 피해 조선인들이 대거 러시아령으로 이주할 때 생긴 마을이다. 녹둔도 사람들은 조, 콩 감자, 옥수수 등을 재배했으며 어업과 염전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녹둔도에 거주했던 사람들은 조선 내에 살고 있었던 농민들보다는 부유한 삶을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녹둔도 마을은 1880년대 중반 113개의 가호가 살고 있었다. 러시아 연해주 남부에서는 규모로 볼때 연추 마을, 나선동에 이어세 세 번째 규모의 마을이었다. 녹둔도 마을의 성장은 1929년까지 계속 이루어졌다. 1929년 녹둔도는 322농가 1,883명이 사는 큰 마을이 되었다. 1929년부터 만주 군벌과 적군 간의 중동 철도를 둘러싼 무력 충돌이 시작되면서 녹둔도의 한인 마을은 절반 넘게 폐쇄되었다. 이후1930년 소비에트 정부의 농촌 집단화 정책에 호응하여 193년 전면적인 집단화를 달성하기도 했으나 1937년 소비에트 정부에 의해 강제 이주되면서 녹둔도 마을은 사라지게 되었다.

자연환경

녹둔도는 두만강 하구에 있는 곳으로 본래는 육지와 연결되지 않은 섬이었다. 그러나 두만강 동쪽의 물줄기가 끊어지기 시작하면서 점차 육지와 연결되기 시작해 1860년에는 완전히 육지와 연결된 상태였다. 녹둔도의 기후는 모래가 많고 바람이 많이 불었다. 또한 홍수가 자주 나는 환경이라 농사짓기에 적합하지 않았다.

참고문헌
  • 반병률, 「러시아 연해주 두만강 하구의 한인마을 크라노스예 셀로의 형성과 변화」(『한국근현대사연구』54, 한국근현대사학회, 2010)
  • 반병률, 「러시아 원동 지역 초기 한인 마을 형성과 러시아의 정책에 대한 재해석」(『역사문화연구』40, 한국외국어대학교 역사문화연구소, 2011)
  • 계봉우, 「아령실기」(『독립신문』, 1920. 2. 20~1920. 4.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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