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문학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지역 러시아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상세정보
정의

1917년 이후 러시아의 정치적·사회적 상황에 따라 형성되고 발전한 러시아 문학과 고려인 문학.

개설

고려인 문학은 필연적으로 러시아의 문학 영향의 변화에 의해서 러시아 문학의 한 갈래로 성장하고 발전한 이중적 특성 혹은 디아스포라(diaspora) 문학의 성격을 띤다.

1917년 사회주의 혁명부터 스탈린 시대까지의 러시아 문학

고려인 문학은 1917년 소련의 볼셰비키 혁명에서 비롯된 것이었고 그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으면서 형성되고 발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1917년 소련의 볼셰비키 혁명, 즉 사회주의 혁명은 소련의 국민들에게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프롤레타리아를 중심으로 하는 근로 인민의 정권이었던 소비에트 정권은 소비에트 사회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을 경주하였다. 소비에트 정권은 성립 초기부터 근로 인민의 적극적인 참여와 그들의 문화적 향상 없이는 존립할 수 없고 발전하지 못한다고 인식하였다. 소비에트 문학은 사회주의 건설을 위하여 문학이 정치적 목적에 종속될 것을 늘 강조하였다. 그리하여 소비에트 문학은 문학의 인식적, 교육적 역할이 극도로 중시된다. 국민의 귀감이 되는 사회주의를 추구하고 도덕적 자질을 가진 인간상을 창조하고 국민을 사회주의 정신으로 교육하고 그리고 사회주의 건설에 필요한 지식을 국민에게 주는 것이 문학의 가장 중요한 과제가 되었다. 말하자면, 문학을 통해 의식 없는 인민들을 교양시키는 문학의 교양적 역할이 강조되었다.

이런 이유로 작품을 알기 쉽게 쓰고 형식을 고정화해서 과도한 계몽적 의도를 강조하였다. 그 결과 과거의 소련 문학의 특징이었던 간결하고도 잘 절제된 문장을 잃어 갔다. 특히, 고려인 문학에서는 장시(長詩) 형태의 시가 상당히 많이 창작되었고 성행하였다. 이와 같은 긴 분량의 시들은 당시 조선 문단에서는 흔히 볼 수 없었던 현상이었다. 소련의 정치적, 사회적 상황의 변화에 따라 소련 문학의 한 갈래로 성장, 발전한 고려인 문학은 소련의 ‘혁명 시인’이라 칭송되는 마야코프스키 시의 영향을 절대적으로 받았다. 소련의 사회주의 건설을 열렬히 지지하고 찬양하였던 마야코프스키는 많은 장시를 창작하였다. 고려인 문학의 선구자라 평가되는 포석 조명희(趙明熙)는 소련에서 장시 형태의 산문시를 창작하였다. 조명희를 비롯한 많은 고려 문인들의 서사성을 지닌 산문시 창작은 소련 문학, 그중에서도 특히, 마야코프스키 시의 영향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스탈린이 집권한 이후 소련 문학은 당파성이 강조되어, 작가는 ‘영혼의 기사’로서 소비에트 사회건설에 적극 참여하고 이러한 과정에서 새로운 인간형을 창조하는 획일적인 문학이 나타나게 된다. 스탈린 시대에 소련은 1928년부터 1932년까지 5개년 경제 계획을 추진하는 ‘신경제정책[네프]’을 전개한다. 문학에서도 역시 5개년 계획에 예술을 포함시킬 것을 주장하기에 이른다. 1930년대 소련 문학의 기본적인 과제는 사회주의 건설을 그리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소련 작가들의 기본적인 과제는 현실에 즉각 호응하여 사회주의 건설 과정을 그리는 것이었다.

고려인 문학에서도 이러한 경향을 반영하여 조명희의 「여자 공격대」[1931], 「맹서하고 나서자」[1934] 등 많은 고려인 작가들은 1930년대 소련 문학의 기본 과제였던 사회주의 건설 과정을 그리게 된다. 이 시대 소련의 문학 작품은 완전히 이데올로기와 정치성에 의해 평가되었다. 그 결과 문학은 사회적인 봉사로 인식되었으며, 공공에 대한 유용성에 따라 평가되었다. 또한, 인민들에 대한 교육적 의무를 외면한 작가는 누구도 퇴폐주의자, 부르주와, 형식주의자로 간주되었다. 그리고 작가에게는 현재 소비에트를 묘사하고, 문학과 삶을 결합시키는 것이 요구되었다. 이 과정에서 공식적으로 대두된 것이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창작 방법론이다.

‘사회주의 리얼리즘’은 1932년에 공식적으로 제기되어 1934년에 개최된 제1차 소비에트 작가회의를 기점으로 확고히 자리를 잡게 된다. 사회주의 리얼리즘은 예술은 현실의 반영이므로 사실적이어야 하고, 소비에트 땅에서 개화한 리얼리즘이야말로 사회주의 정신으로 무장한 것이라는 개념에서 유래한 것이다. 사회주의 리얼리즘은 예술의 목적에만 집중한다. 사회주의 리얼리즘은 예술가들이 근로 인민들과 함께 사회주의 건설을 도와야 할 것을 강조하며, 사회주의 이데올로기에 의해 영감을 받은 모든 작품은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표방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1930년대의 소련 문학의 경향은 다음과 같다. 1920년대 예술의 다양성은 사라졌으며, 문학은 더욱 획일화되었고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신성시되었다. ‘예술의 당파성’에 따라 문학은 당의 지시와 통제, 관리에 의해서 모든 것이 계획되고 창조되었다. 말하자면, 예술의 관료주의화가 급속도로 진행되었던 것이다. 이 과정에서 예술가에게 주는 ‘스탈린상’이 제정되었고, 스탈린 정권이 수여하는 메달, 표창장, 훈장 등이 생겨났다. 결국, ‘예술의 당파성’은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이념적, 미학적 원리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이 시기에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구현한 최초의 작품이라 할 수 있는 고리키의 『어머니』[1906]는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형성 과정에 커다란 의의를 가진 작품으로 조명되었다.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질적 특성은 긍정적 주인공을 등장시켜 부정적 현실의 억압과 고난을 극복하고 새로운 삶을 개척하는 것을 핵심으로 한다. 긍정적 주인공은 부정적 현실에서 어떠한 갈등이나 좌절 없이 미래에 대한 낙관적인 자세와 태도로 일관하는 특성을 보인다. 이로 인해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작품에서는 이른바 긍정적 주인공의 ‘무갈등론’이 내재하는 중요한 특성을 지니게 된다.

1940년대 들어와 소련에서는 독일과의 전쟁으로 인해 이른바 전쟁 문학이 대두된다. 전쟁 이후 1946년 8월 14일, 전연방 공산당 중앙위원회의 결의안에서 새로운 문학 정책이 공식적으로 채택되었다. 이 결의안은 스탈린의 지시에 따라 당 서기를 역임한 정치국원 안드레이 즈다노프에 의해 작성되었다. 이 결정에 의해 수많은 예술가들의 작품이 형식주의자, 퇴폐주의 등의 비판을 받았으며, 1946년과 1952년 사이에 많은 문학 예술가들이 숙청되거나 망명하였다. 이러한 정치적, 사회적 현실 속에서 스탈린 시대 고려인 문학은 스탈린의 강압적인 정책에 따라 민족의 정체성이나 강제 이주와 같은 금기의 내용을 담아낼 수 없었다. 오직 소련의 정책에 따른 문학적 경향에 따라 고려 문인들은 소련에 동화되거나 소련 체제를 찬양하는 이데올로기적 색채가 짙은 작품을 생산하게 되었다.

스탈린 이후의 러시아 문학

1953년 3월 5일 스탈린의 죽음은 소련 역사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흐루쇼프에 의해 제기된 스탈린 격하 운동의 기치 아래에서 작가들은 이전과 다른 해빙과 자유의 분위기 속에서 소비에트 사회의 부정적인 면과 개인의 삶, 사랑, 죽음 등의 문제가 문학의 주제로 다루어져 문학 본연의 자세를 찾아가는 듯하였다. 많은 작가들이 감옥과 강제 수용소에서 석방되었으며, 검열관의 엄격한 태도는 완화되었고, 금지되었던 주제들이 조금씩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러한 문학의 해빙기도 잠시였고 브레즈네프 시대에 들어와서 또 다시 문학 창작에 제약이 강화되었다. 브레즈네프 시대에도 많은 작가들이 권력의 희생양이 되어 감옥으로 가거나 망명하여 창작의 기회를 박탈당했다.

1980년대 들어서서 소련 문학은 새로운 정치적 기운 속에서 비로소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창작의 분위기 속에서 다양한 그룹이 다양한 작품을 쏟아 놓게 되었다. 특히, 소수 민족 출신 작가와 농촌 출신 작가들이 고유한 민족 문화와 사회 문제를 예술성 있게 다루어 신선한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1985년부터 시작된 고르바초프의 개혁, 개방 정책은 소련의 문학에 대변화를 가져왔다. 검열과 금기의 폐지, 금기시되어 왔던 작가와 작품의 복권, 다양한 문예 단체와 잡지의 출현, 현대 소련 문학의 성격과 진로에 대한 치열한 논쟁, 소련 작가동맹의 실질적인 해체 등 많은 큰 변화가 있었다. 이 중에서 가장 큰 변화는 오랫동안 소비에트 문학의 기본 창작 방법이었던 사회주의 리얼리즘에 대한 다양한 논의와 논쟁이다.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규범적, 독단적 원칙과 그 적용에 대한 건설적 비판과 반성이 제기되었고, 논쟁이 가열되면서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원천적으로 부정하는 의견도 제출되었다.

이 시대의 분위기를 반영하여 고려인 문학도 그동안 금기시되었던 ‘민족’이나 ‘강제 이주’, 떠나 온 ‘연해주’에 대한 내용의 작품을 생산하게 이른다. 연성용의 「오, 수남촌」[1989], 박현의 「무심한 세월이 남긴」[1989]과 「37년도의 하루가」[1997] 등의 시와 한진의 소설 「공포」[1989] 등이 그것이다.

1990년을 기점으로 고르바초프 정권의 몰락과 소비에트연방의 실질적인 붕괴, 소련 작가동맹과 소련 공산당의 실질적인 해체와 함께 시작된 소련의 정치, 문화유산에 대한 무조건적인 폄하와 극단적인 부정은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논쟁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끼쳤다. 그 결과 소비에트 문학과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존재 자체를 원천적으로 부정하게 되었다. 오늘날 러시아에서 사회주의 리얼리즘은 정치, 이념 논쟁의 대표적인 희생 제물이 되었다.

참고문헌
  • 마르크 슬로님, 『소련의 작가와 사회-1917-1977』(임정석·백용식 옮김, 열린책들, 1986)
  • 박형규 외, 『러시아 문학의 이해』(건국대학교 출판부, 2002)
  • 김규진, 『러시아 문학의 입문』(월인, 2003)
  • 김낙현, 「조명희 시 연구-구소련에서 발표한 시를 중심으로」(『우리문학연구』36, 우리문학회, 2012)
  • 김낙현, 「디아스포라 고려인 시에 나타난 조국과 고향의 변화 양상」(『어문연구』43-4, 한국어문교육연구회, 2015)
이전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