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자흐스탄의 역사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지역 카자흐스탄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상세정보
정의

고대에서부터 독립 후 현대까지 카자흐스탄 역사와 카자흐스탄 고려인에 대한 개관.

고대

중앙아시아 초원 지대에 사는 유목 민족에 기반을 둔 카자흐스탄은 동양과 서양을 잇는 실크로드 초원길에 있어 동양과 서양의 문화가 공존하는 곳이자 외부 민족과 문화적 교류가 활발한 곳이다. 카자흐스탄 고대 역사는 대략 B.C. 1500년경부터 초기 청동기 문화를 기반으로 형성되었다고 본다. B.C. 500년경에 스키타이의 일부인 사카 부족이 알타이산과 우크라이나에 이르는 넓은 지역을 지배했다. 사카 부족은 유럽인에 가까운 민족이었다. 이 시기 유물로 알마티 인근의 고분에서 발굴된 갑옷을 입은 전사 모형의 ‘황금 인간’이 발굴되었다. 이 유물은 현재 카자흐스탄의 국가 상징으로 사용하고 있다. B.C. 200년경에 훈족이 중국 북부와 몽골 초원 지대에서 카자흐스탄 동부 지역으로 침입했으며, 550~750년경에 튀르크족이 카자흐스탄 만주 지역으로 이주하였다. 튀르크족은 만주에서 남부 카자흐스탄에 이르는 넓은 영역에 콜튀르크 제국을 건설했다.

카자흐 민족의 국가 형성

1218~1221년 몽골의 칭기즈칸이 카자흐스탄 지역을 정복하였으며, 이 지역을 포함하여 킵차크한국과 차가타이한국이 형성되었다. 이후 카자흐스탄의 영토에서는 15세기 초에 킵차크한국에서 분리된 카자흐한국이 형성되면서 서서히 민족 국가 형성의 기반이 조성되었다. 이후 카자흐한국은 대 올다[Great Horde], 중 올다[Middle Horde], 소 올다[Little Horde] 등 3개 한국으로 분열되었고, 이후 300여 년간 지방 호족을 통합하여 봉건 영주와 농노로 구성된 봉건 국가를 형성했다. 카자흐 국가는 18세기까지 유지되었다.

러시아로 합병

봉건 제후 간의 전쟁으로 힘을 잃기 시작한 3개의 한국은 1731년 준가르의 침입으로 ‘대재난의 시대’를 경험하면서 러시아 제국에 보호를 요청했다. 러시아 제국은 카자흐스탄과 접경 지역에 국경 요새와 오렌부르크를 비롯한 소규모 도시를 건설하고 카자흐스탄 지역으로 세력을 확대하였다. 러시아 제국은 19세기 초에 카자흐스탄 북부와 중부 지방에 8개의 러시아식 행정 구역을 조성하는 등 식민지 팽창 정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였다. 1860년대에 카자흐스탄의 한과 왕족의 권력은 약화되었고, 대 올다가 러시아에 편입되면서 카자흐스탄 전역이 러시아 제국에 병합되었다.

소비에트 정권 수립과 사회주의 체제

1917년 러시아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나자 러시아 제국의 영토로 편입되었던 카자흐스탄에서도 소비에트 정권이 수립되었다. 그래서 1920년 카자흐스탄은 키르기스 자치공화국의 일부로 편입되었다. 카자흐스탄은 1924년부터 추진된 민족 구성을 바탕으로 자치 공화국으로 개편한다는 소비에트연방 공산당의 결정에 따라 1925년 4월 카자흐 소비에트 사회주의 자치공화국이 되었고, 1936년 12월 소련의 15개 공화국 중 하나인 카자흐스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으로 승격되었다.

카자흐스탄의 독립

1989년 카자흐스탄 공산당 서기장으로 선출된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는 1990년 4월에 카자흐스탄공화국의 대통령에 올랐다. 그리고 1991년 12월 1일 실시된 대통령 선거에서 98%의 지지율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카자흐스탄은 1991년 12월 16일 소련에서 완전히 분리 독립하여 독립국가연합의 일원이 되었다. 카자흐스탄은 1992년에 국제연합에 가입하였고, 1993년 헌법을 채택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1997년에 수도를 알마티에서 아스타나로 옮겼다. 나자르바예프는 현재까지 대통령으로서 직위를 유지하고 있다.

카자흐스탄의 역사와 고려인

카자흐스탄에 고려인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1937년 스탈린의 고려인 강제 이주 정책의 결과다. 그러나 고려인이 카자흐스탄에 처음 정착한 것은 1928년 중앙아시아에서 벼를 재배하기 위해 연해주의 재러 한인 70가구 300여 명을 초청하여 ‘카스리스[카자흐스탄의 쌀]’ 집단 농장을 조성하면서부터다. 카자흐스탄의 고려인은 1927년 강제 이주 당시 10만여 명이 카자흐스탄에 정착했다. 이들이 정착한 주요 지역은 우슈토베, 크질오르다, 알마티, 카라간다 등 카자흐스탄 전역이었다. 이후 고려인은 카자흐스탄의 소수 민족 중의 하나로 자리 잡았다. 카자흐스탄의 고려인은 우즈베키스탄의 고려인과 마찬가지로 콜호즈를 만들고 열심히 노동하여 카자흐스탄은 물론 소련에서 가장 높은 성과를 올린 대표적 민족이었다. 그 결과 100명이 넘는 고려인이 사회주의 노동 영웅 칭호를 받았다. 카자흐스탄의 대표적인 고려인 콜호즈는 아방가르드제삼 인터내셔널이었다.

고려인의 대표적 기관인 고려 사범 대학, 고려극장, 순수한 한글 신문 『선봉』 신문사가 카자흐스탄 크질오르다로 옮겨 왔다. 1938년부터 고려극장은 「춘향전」, 「심청전」 등을 공연하였고,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의 고려인들을 위문하기 위한 순회공연을 다녔다. 고려인 신문 『선봉』은 카자흐스탄에서 1938년 5월 15일부터 『레닌기치』로 제호를 바꾸어 발간하였으다. 『레닌기치』는 고려인의 소식과 소련 및 국제 사회와 관련한 소식을 알렸으며, 또한 한반도 소식을 전하고, 한반도 통일을 위한 노력도 기울였다.

1991년 소련이 해체되고 독립하는 과정에서 카자흐스탄의 고려인은 많은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카자흐스탄은 독립 이후 민족주의 정책을 실시하여 공식 언어를 카자흐어로 결정했다. 따라서 러시아어만을 구사하는 고려인은 사회 진출에 어려움을 겪는 실정이다. 그러나 우즈베키스탄보다는 경제적으로 안정된 카자흐스탄의 고려인은 카자흐스탄 국민의 충실한 일원으로 살아가고 있다.

참고문헌
  • 예르덴 카쥐베코프 외, 『카자흐스탄의 문화와 역사』(김일겸 옮김, 강남대학교 출판부, 2003)
  • 김일수 외, 『중앙아시아의 거인 카자흐스탄』(궁리, 2008)
  • 김일겸, 『카자흐스탄의 정치와 경제』(학민사, 2009)
  • Unesco Almaty(http://old.unesco.kz)
  • Академик(http://dic.academic.ru)
  • Коре Сарам(http://koryo-saram.ru)
  • История Казахстана(https://tarikh.k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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