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S (독립국가연합)
특별한 이야기

중앙아시아 고려인 시에 나타난 조국과 고향 이미지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지역 CIS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상세정보
정의

CIS 지역 고려인 시에 나타난 조국과 고향의 이미지의 정치적, 사회적 상황에 따른 변화 개관.

개설

한반도가 아닌 CIS 지역에서 펼쳐진 고려인 문학은 무엇보다도 조국과 고향에 대한 인식과 태도 면에서 다른 재외 한인 문학과 구별된다. 고려인 문학에서 표출된 조국과 고향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과는 다른 개념으로 다가온다. 고려인 문학에서 조국이나 고향은 소련의 정치적, 사회적 상황에 따라 조선, 소비에트, 연해주, 중앙아시아, 한반도[남한과 북한] 등의 개념으로 변주된다. 사회주의 종주국 소련에서 문학 활동을 했던 고려인은 강한 민족주의를 표출하는가 하면 때로는 생존을 위해서 소련 체제에 철저히 동화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조국과 고향에 대한 양가적인 인식과 태도를 드러내는 등 복합적이고 다변적인 태도를 보인다.

강제 이주 전1917~1937 - 안태모국으로서 조선과 이상적인 또 다른 조국으로서 소비에트

고려인 시에 나타난 조국과 고향의 이미지를 검토할 때,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사항은 당시 소수 민족에 대한 소련의 민족 정책을 검토하는 것이다. 1937년 강제 이주 전, 레닌은 10월 혁명 후 소련 내 수많은 소수 민족을 결집하여 더 굳건한 사회주의 건설을 일구기 위하여 민족 자결주의를 채택한다. 레닌의 민족 자결주의에서 가장 핵심적인 것은 각 민족이 분리하여 독립할 수 있다는 민족 자결권에 대한 인정이었다. 레닌의 민족 정책은 나라 잃은 식민지 치하에서 자신의 고향을 등지고 떠나왔던 소수 민족인 고려인에게 열렬한 지지를 끌어냈다.

이 같은 배경에서 강제 이주 전 고려인 시는 창작되었다. 조명희의 「10월의 노래」[1930]와 시랑의 「조선은 어대로 가느냐」[1931] 같이 소비에트를 통해 이상적인 조국의 모습을 발견한 고려인들은 시에서 소비에트와 같은 조선의 미래를 노래한다. 고려인 문학의 아버지라 평가되는 조명희의 「10월의 노래」는 조명희가 소련으로 망명한 지 3년도 안 된 상황에서 거침없이 소련을 “오, 우리의 모국 소비에트 공화국의 거룩한 탄생이여!”라고 노래한다. 한편, 시랑의 「조선은 어대로 가느냐」에서 시인은 고려인에게 “멸망의 함정에 빠저가는 조선”을 구해내자고 역설한다. 사회주의 혁명의 승리는 곧 조선의 해방을 도래하게 하고 그러한 조선의 미래 모습은 “새나라 쏘베트가 되리라”는 것으로 예견된다. 그러므로 이 시에서 시인의 조국인 조선은 단순히 개인적 차원의 고향이 아닌 민족 공동체의 운명으로 확대된 것으로서, 일제로부터 반드시 되찾아 원래의 모습대로 복원해야 할 당위적 공간으로 제시된다.

강제 이주 전 고려인은 소련을 이상 국가로 설정하여 자신들의 모국인 조선의 민족 해방을 실현하려는 기대감을 드러내며,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소비에트는 자신들의 또 하나의 조국으로 인식된다. 특히 조명희「아우 채옥에게」(1935)는 이러한 점을 잘 보여 준다. 이 시에서 화자가 사회주의 건설과 혁명에 매진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앞날의 무산자 국가가 될 조선”을 위해서이다. 결론적으로 조명희는 무산자의 조국인 소비에트를 통해 이상적인 조국의 모습을 발견했고, 그 이상적인 소비에트의 조국은 곧 자신의 모국인 조선의 미래 모습이라고 예견한다.

강제 이주 전 고려인 시에서 나타난 조선의 개념은 개인적 차원이 아닌 민족적 차원으로 확대된 미래 지평의 공간이다. 또한 고려인에게 조선은 언젠가는 돌아갈 수 있다는 귀향의 의지가 잠재된 원초적이고 근원적인 안태모국이며, 소비에트는 그러한 귀환을 가능하게 할 사상적, 정신적인 또 다른 이상적인 조국으로 인식된다.

강제 이주 후1937~1953 - 강요된 새로운 조국과 고향으로서의 소비에트

1937년 9월에 스탈린 정권에 의해 적성 민족으로 낙인찍혀 강행된 강제 이주는 연해주 고려인의 삶과 문학을 완전히 전복해 버린 미증유의 비극적 사건이었다. 강력한 대소련 건설의 기치를 내건 스탈린의 ‘소비에트화 정책’은 모든 것이 소련을 중심으로 동화되고 발전될 것을 강조하였다.

강제 이주 후 스탈린의 민족 차별 정책에 따라 적성 민족으로 분류된 고려인은 소련 공민으로서 온전한 삶을 유지할 수 없었다. 고려인은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존적 전략 차원에서 소련을 자신의 조국과 고향으로 노래하게 된다. 강태수「밭 갈던 아씨에게」(1938)는 강제 이주 직후인 1938년에 발표되었던 작품이다. 이 시는 고향 연해주나 강제 이주에 관한 직접적 표현은 없었지만, 강제 이주로 떠나왔던 고향 연해주를 소재로 삼았다는 이유로 소련 당국에 보고되어 필화 사건을 일으킨 작품이다. 체포된 강태수는 다행히 목숨은 건졌으나, 이 시 때문에 그는 당과 인민의 원수로 몰려 무려 21년 동안이나 감금과 연금 생활을 해야만 했다. 강제 이주 후 스탈린 체제에서 조선, 고향[연해주], 민족, 강제 이주, 1937년 등은 반소 행위로 간주하여 절대 발설할 수 없는 금기의 대상이 된다.

한편, 연성용의 「나는 자랑한다」(1953)에서 소련의 이미지는 “꽃피는 이 땅”, “자유로운 이 나라”, “정 깊은 내 나라”, “쏘베트 조국”으로 제시되어, 시인이 조국으로 여기는 소비에트는 매우 밝고 긍정적인 이상 국가로 그려진다. 그러나 여기서 강제 이주 전과 후의 시에서 나타난 조국과 고향은 분명한 차이가 있다는 점을 주의해야 한다. 강제 이주 전 고려인 시에서 나타난 조국으로서 소련은 고려인 자신들의 안태모국인 조선에 민족 해방을 가져다줄 이상적인 조국이라면, 이 시에서 소련은 스탈린 체제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적 차원에서 의식적으로 노래한 조국이다. 이 시에서 시인은 “쏘베트 조국에/ 사는 것을/ 당당히 자랑한다”라고 노래하지만, 당시 고려인은 소련 공민으로서 공민권과 거주 이전의 자유가 박탈당한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시인은 소련 공민으로 당당한 삶을 살아간다고 노래한다. 스탈린 정권에서 고려인에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존의 문제였다. 그래서 고려인은 강제 이주로 떠나온 고향 연해주를 의식적으로 망각하려는 태도를 보인다.

스탈린 시대 고려인 시에서 나타난 조국과 고향은 고려인이 생존적인 전략적 차원에서 노래한 강요된 조국과 고향 소비에트이다.

스탈린 사후의 시대1953~1985 - 조국과 고향에 대한 양가적인 태도

스탈린 사후, 고려인들은 잠시 새로운 변화를 맞이한다. 흐루쇼프가 정권[1953~1964]을 장악하고 스탈린의 민족 탄압 정책과 개인 숭배를 비판하면서 레닌식의 민주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이에 따라 수많은 소수 민족의 명예 회복과 복권이 이루어지며, 고려인 역시 거주 이전의 제한이 풀리고 소련 공민으로서 공민권을 회복하는 등 이전보다는 한층 더 해빙의 분위기에서 작품을 창작한다. 그러나 이러한 분위기는 잠시뿐이고 브레즈네프 시대[1964~1982]에 다시 소비에트를 중심으로 한 동화 정책인 ‘단일 소비에트화’를 추진한다. 이 정책 역시 민족적 요구는 반소 행위로 간주하였고, 소련 내 소수 민족의 민족주의 운동은 이적 행위로 취급되었다.

1960년대 흐루쇼프 시대에 들어와 고려인은 비로소 김세일「내 고향 원동을 자랑하노라」[1962]와 연성용의 「신한촌」[1967], 주영윤의 「원동의 진주」[1973]와 같이 고향인 연해주를 형상화한 시를 발표한다. 그런데 이 시기에 주목되는 사실은 고려인이 자신들의 고향과 조국에 대한 양가적 태도를 드러낸다는 점이다. 김세일「내 고향 원동을 자랑하노라」[1962]는 시인이 25년 전 연해주에서 중앙아시아로 떠나온 후 그동안 가보지 못했던 고향을 그리워하는 작품이다. 그러나 스탈린 사후 잠시나마 해빙의 분위기를 맞이했지만, 여전히 강제 이주나 민족의식 등은 직접 드러낼 수 없는 불온한 대상이었다. 그러기에 시인은 강제 이주의 상황을 우회적으로 “그곳 떠난 지 스물다섯 해건만”이라고 진술하며, 아직은 현실적으로 고향에 돌아갈 수 없는 처지이기에 “생시면 맘속에 숨어 있다가도/꿈이면 나타나 보이곤 합니다”라고 노래한다. 시인에게 고향은 현실적으로 돌아갈 수도, 마음껏 노래할 수도 없지만, 그 고향은 의식의 심연에 자리 잡은 것으로서 아직은 꿈에서나 가볼 수 있는 곳이다. 말하자면, 이 시에서 고향은 시인 자신이 언젠가는 귀향하고 싶은 안식과 향수의 공간이다.

그러나 김두칠의 「송림동 사람들」[1974]은 전혀 다르게 읽힌다. 시인은 자신이 조선 사람이지만, 소련 공민이고 자신의 고향은 원동[연해주]이며 조국은 소련이라고 밝힌다. 한마디로 자신이 조선 사람인 것은 분명하지만, 조국은 소련이며 소련의 공민이라는 것이다. 또한 시인은 “거룩한 쏘베트 주권”은 제정 시절에는 이름조차 없었던 천대받던 조선 사람에게도 공민권을 주었다고 소비에트의 공덕을 찬양한다. 더 나아가 소비에트 덕분으로 고려인의 “악몽같은 옛날은/영원히 멀어졌다/행복의 오늘 자랑한다”라고 하며, 자신과 선조들의 고향인 연해주와 조선을 전면적으로 부정한다. 이처럼 이 시는 자기 정체성의 뿌리인 조선이나 고향 연해주까지 부정하면서 소비에트에 대한 보은 사상과 공덕을 기리면서 소비에트의 공민임을 알리고자 역설한다.

이상과 같이 두 시 모두 고향[연해주]이나 조선을 노래하지만, 이에 대한 고려인의 인식과 태도는 상당히 양가적이다. 김세일「내 고향 원동을 자랑하노라」에서 고향 연해주는 언젠가는 귀향하고 싶은 혹은 귀향해야 하는 안식과 향수의 근원적인 대상으로 그려지지만, 김두칠의 「송림동 사람들」에서는 자신의 고향인 연해주와 자신의 뿌리인 조선에 대한 그 어떤 귀향 의지나 향수도 드러나지 않으며, 그러한 고향과 조국은 전면적으로 부정되어야 할 “악몽같은 옛날”일 뿐이다. 두 시는 모두 똑같이 고향을 형상화하지만, 김세일「내 고향 원동을 자랑하노라」가 고향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탐색의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면, 김두칠의 「송림동 사람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극단적으로 부정하면서 철저하게 소련에 동화되어 소련 공민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강한 목적성을 드러낸다. 이 두 시를 통해 우리는 얼마나 고려인 시문학이 소련의 정치적, 사회적 상황 변화에 따라 민감하게 대응하면서 타자성이 두드러진 문학으로 발전했는가를 알 수 있다.

1980년대 후반 - 복원된 고향 연해주와 또 다른 고향 찾기

고려인 문학에서 조선이나 고향, 강제 이주 등 민족 정체성에 관계된 금기의 봉인은 1980년대 후반에 들어서서 해제된다. 1985년 고르바초프가 시작한 개혁과 개방 정책은 1991년 구 소련이 붕괴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소련은 1989년 9월 새롭게 민족 정책의 강령을 발표하는데, 그것은 소련 내 각 민족의 지위 향상과 권한 확대, 각 민족의 자치구 구성 인정, 강제 이주당한 민족에 대한 명예 회복 선언, 강제 이주가 소련의 과오였고 그것을 인정하겠다는 조항이다. 이어서 러시아 최고회의는 1993년 3월 ‘재러시아 한인 명예 회복에 관한 법안’을 통과하여 고려인에 대한 강제 이주와 이주 후의 탄압은 불법적이었고 범죄적 조치였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이에 따라 고려인의 명예 회복과 강제 이주 이전의 원래 거주지로 귀환할 권리가 있음을 공포한다. 이런 시류에 편승해 고려인들은 그동안 억압되고 망각되었던 조국[한반도]과 고향[연해주나 한반도], 민족, 강제 이주, 1937년 등을 소환하여 그것을 복원하게 된다.

우선, 연성용의 「오, 수남촌!」(1989)처럼 고려인은 그동안 철저하게 은폐해야만 했던 강제 이주의 기억을 들추어 내어 잃어버렸던 자신들의 고향을 불러들인다. 작가 연성용은 1909년 연해주에서 태어나 27세에 강제 이주를 당한 시인이었다. 연성용은 이 시에서 강제 이주가 한 개인이 아닌 민족 전체에 씻을 수 없는 상흔을 남긴 “대대로 잊지 못할/용서치 못할 죄악”임을 분명히 한다. 이외에도 강제 이주의 기억을 소환하여 상실된 고향이나 민족 정체성을 복원한 대표적인 시로는 박현의 「무심한 세월이 남긴」[1989], 「37년도의 하루가」[1997] 등이 있다. 이처럼 고려인이 자신의 작품에서 민족 정체성에 관계된 강제 이주나 고향 연해주에 대한 그리움 등을 직접 분출할 수 있었던 시기는 소련의 개혁과 개방 정책이 시행되었던 1980년대 후반에 이르러서이다.

그러나 구 소련의 붕괴는 고려인들에게 또 다른 고향 찾기를 강요하는 정체성의 문제를 초래한다. 구 소련이 붕괴한 후 중앙아시아에 밀어닥친 자민족 중심주의 또는 종족 민족주의의 열풍으로 고려인은 또다시 소련과 중앙아시아에서 이중적 차별과 소외를 겪어야만 했다. 양원식의 「고향 땅으로 날아다오」[2002]처럼 이제 또다시 새로운 고향 찾기의 여정에 들어선다. 양원식은 평안남도에서 태어나 한국 전쟁 후 모스크바 국립영화대학을 수료하고 소련에 망명한 고려인 시인이다. 이 시는 평생을 살아왔던 카자흐스탄에서 일어났던 자민족 중심주의의 분위기 속에서 창작된 작품이다. 시인은 고향 북한으로 돌아가고 싶으나, 그것은 결코 쉽지 않는 상황임을 토로한다. 시인에게 고향은 “자나 깨나 보고 싶은/나의 고향 땅”이지만, 고향으로 돌아갔을 때, “고향 땅에서/나를 영 잊었다면 어찌하리?/마중 나와 인사해 주고/ 포옹해 줄 사람이나 있을런지?/폭행자들의 말을 곧이 들어/정말 나를/조국의 배반자로/대하지나 않을런지?”라고 불안해하면서 쉽게 고향으로 갈 수 없는 처지를 고백한다.

이처럼 구 소련 붕괴 후 중앙아시아 자민족 중심주의는 또다시 고려인을 소외하고 배제해 버렸다. 자민족 중심주의 정책으로 소수 민족인 고려인은 실제로 모든 분야에서 차별을 받아야만 했으며, 결국 수많은 고려인은 연해주나 러시아 지역으로 다시 이주를 감행하였다. 그들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실질적으로 한반도로 귀환하는 것이 허락되지 않은 상황에서 중앙아시아를 자신들의 고향으로 여기고 살든지, 아니면 선조들의 고향인 연해주로 귀환하는 것이었다. 지배 민족이 바뀌고 지배 언어, 지배 문화가 바뀐 상황에서 고려인은 조국 한반도와 현지에서 이중적 차별과 소외를 당하면서 살아간다. 그러기에 어정쩡한 경계인으로 전락한 고려인은 자신이 태어난 고향은 아니지만, 단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조국[남한]을 ‘상상적 공동체’로서 고향을 노래한다. 그 대표적인 시가 박현의 「그리움도 행복일 게다」[1997]로서 그는 자신이 태어나지 않고 단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남한의 서울을 “친척 하나 없고 아는 이 없어 서운해도/동포애로 눈시울 뜨거우면 그만이다/서울이란 그리움이고 그리움이 서울이기에”라고 노래한다.(박현, 『꼴호즈의 들길에서』, 의성출판사, 1997)

이처럼 구 소련 붕괴 후 고려인은 상실한 고향을 복원하여 정체성을 회복하는 과정에서 중앙아시아의 자민족 중심주의가 발흥하여 지배 민족의 언어와 문화를 수용하기도, 그렇다고 동화되어 살아가기도 힘든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다.

결론

고려인 시에서 나타난 조국과 고향의 의미는 소련의 정치적, 사회적 상황에 따라 변하였다.

연해주 시절 고려인 시에서 나타난 조선은 원초적이고 근원적인 안태모국의 개념이고 소비에트는 사상적, 정신적인 또 다른 이상적인 사회주의 조국으로 형상화된다.

강제 이주 후 고려인 시에서 조국과 고향은 강요된 조국과 고향으로서 소비에트를 의미한다. 스탈린 체제에서 적성 민족으로 취급되었던 고려인은 생존적 전략 차원에서 의식적으로 소비에트를 자신들의 조국과 고향으로 노래한다. 스탈린 사후 흐루쇼프 시대가 도래하면서 박탈당했던 공민권을 회복하고 거주 이전의 자유를 획득하면서 고려인은 그동안 억압되고 은폐되었던 고향 연해주에 대한 기억을 복원한다. 그러나 여전히 금기시되었던 민족 정체성이나 강제 이주와 관련된 것을 직접 발설할 수 없었던 상황에서 고려인은 과거의 고향 연해주나 자신들의 뿌리인 조선을 극단적으로 부정하면서 현재의 소비에트를 조국으로 인정하고 찬양하는 양가적인 태도를 드러낸다.

1980년대 후반에 들어와서야 비로소 고려인은 조국[한반도]이나 고향[연해주, 한반도], 강제 이주 등 그동안 봉인되었던 금기를 해제하여 정체성을 회복한다. 그러나 구 소련이 붕괴한 후 중앙아시아에서 광풍처럼 일어난 자민족 중심주의는 또다시 고려인에게 또 다른 고향 찾기를 강요하는 계기가 되었다. 현실적으로 한반도로 돌아갈 수도 없는 상황에서 고려인은 조국과 현지에서 이중적 차별과 소외를 당한 채, 선조들의 고향이었던 연해주로 다시 회귀하는 경향을 보인다.

조선에서 연해주로 다시 연해주에서 중앙아시아로 그리고 중앙아시아에서 다시 연해주로 회귀하는 디아스포라(diaspora)의 삶과 문학을 전개하였던 고려인들, 그들의 시에서 나타난 조국과 고향의 변화 양상은 우리 민족의 비극적 현대사를 그대로 나타내는 지표가 된다.

참고문헌
  • 김낙현, 「구소련권 고려인 시문학의 현황과 특성」(『어문연구』32-2, 한국어문교육연구회, 2004)
  • 최강민, 「중앙아시아 고려인 시에 나타난 조국과 고향 이미지」(『억압과 망각, 그리고 디아스포라-구소련권 고려인 문학』, 한국문화사, 2004)
  • 김낙현, 「디아스포라 고려인 시에 나타난 조국과 고향의 변화 양상」(『어문연구』43-4, 한국어문교육연구회,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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