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S (독립국가연합)
특별한 이야기

고려인들이 전통 명절 중 가장 성대하게 치루었던 날은 언제일까요? 한식입니다. 왜?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지역 CIS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상세정보
정의

러시아와 중앙아시아의 고려인에게 가장 큰 전통 명절.

개설

중앙아시아와 러시아의 고려인은 민족의 전통 명절 대부분을 지금까지도 지켜오고 있다. 조상 숭배와 추수 감사 제의적 성격을 지닌 우리 민족의 전통 명절 중 고려인은 한식을 가장 큰 명절로 지낸다. 이는 농사를 시작하기 전 모든 가족이 모여 제사를 지내는 날이 한식이기 때문이다.

고려인과 세시 풍속

인간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생활의 주기를 형성하고 그 주기에 따라 다양한 행사를 개최한다. 인간에게 행사는 하나의 사건에 불과하지만, 사건이 일회적으로 그치지 않고 반복될 때 그것은 나름대로 인간에게 새로운 경험을 갖게 해 준다. 이렇게 인간이 역사를 이어오면서 반복해서 하는 활동이 세시 풍속이다.

세시 풍속도 한 사회의 사회적, 정치적, 생태적 환경에 따라 변화하기 마련이다. 중앙아시아 각 공화국은 소비에트연방에서 독립하면서 세시 행사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예컨대 소비에트연방에서 개최되었던 국경일이나 기념일은 카자흐스탄이 독립하면서 그대로 이어지지 않았고, 새로운 개념의 기념일이 등장하고 국경일이 정해졌다. 이것은 세시 행사가 정치적 영향을 받았음을 보여 준다.

세시 풍속은 1년을 주기로 사계절의 일정한 날에 주기적이고 반복적으로 되풀이되는 행동 양식과 생활 양식을 일컫는 것으로 일련의 연중행사를 말한다. 세시 풍속이 일정한 날에 반복적으로 수행되기 때문에 일정한 날을 절일(節日) 혹은 명절(名節)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명절이라는 단어의 마디를 뜻하는 절(節)이라는 말이 나타내듯이, 우리 선조는 일년을 사계절의 단위로 쪼개고, 다시 12개의 마디로 쪼개어 마디별로 명절을 배치하여 생활 리듬에 박차를 가했다고 생각한다.

인간이 경험하는 시간은 직선형 시간관과 순환형 시간관으로 나누어진다. 직선형 시간관은 시간을 일정한 방향으로 흐르고 회귀나 반복을 할 수 없는 직선으로 보지만, 순환형 시간관은 시간을 일정한 단위가 원점 회귀의 반복을 계속하는 구조로 파악한다. 따라서 직선형 시간관에서 보면 모든 일은 일회적일 뿐이지만, 순환형 시간관에서 보면 매사가 반복적이다. 순환형 시간관은 자연의 순환에 따른 식물의 생장 주기를 반영하고 있어서 자연력(自然曆)이라고 할 수 있다. 자연적 질서에 따라 삶의 기초라고 할 수 있는 의식주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자연력이 그대로 생산력(生産曆)이 되었던 셈이다.

생산력은 생산 활동의 주기적 행위 계열로서 한국의 생산력은 대체로 농업을 중심으로 체계화한 역법이다. 한국에서 생산력의 역할을 수행한 것이 24절기인데, 이 24절기를 통해 음력보다는 훨씬 정확하게 양력으로 계절을 따져서 농사를 지었음을 알 수 있다.

러시아와 중앙아시아에서는 고려인뿐만 아니라 여러 민족의 생활 리듬이 양력에 근거하고 있다. 다만 고려인은 양력을 근거로 생산력을 인식하는 반면 세시 행사력은 한국의 음력인 고려 달력을 근거로 한다. 물론 양력을 근거로 세시 행사가 개최될 때도 있다. 하지만 러시아인이나 카자흐인, 우즈베크인이 오직 양력만을 삶의 지표로 삼는 데 비해, 오로지 고려인만 음력에 근거하여 일상생활의 변화를 통해 새로운 질서의 생활을 가져다주는 명절을 배치한다.

고려인이 음력을 인식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소비에트연방 시절 『레닌기치』 그리고 소비에트연방이 해체된 후 『고려일보』에서 발행한 달력이 있었다. 이 달력에는 양력을 기준으로 12달이 구성되어 있고, 양력 아래 음력을 표기하고 24절기도 표기하였다. 이 달력을 통해 고려인은 음력을 토대로 명절을 인식할 수 있었다. 고려인은 이 달력을 고려 달력이라고 불렀다. 고려 달력에는 설날, 대보름, 단옷날, 추석 등의 명절이 나타나 있다. 최근에는 한국에서 들어온 선교사들이 개척한 교회의 달력이 배포되면서 그 달력의 음력과 절기를 통해 명절을 인식할 때도 있다.

세시 풍속은 생업 구조와도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중앙아시아의 생산물에는 벼, 사탕무, 수박, 양파, 감자, 양배추, 당근, 밀, 콩, 녹두, 옥수수, 해바라기, 무, 고추, 오이, 보리 등이 있다. 주로 4월에 씨 뿌리기를 하여 9월과 10월에 수확할 때가 많다. 1월, 2월, 11월, 12월은 농한기여서 별다른 일이 없다. 최근 들어 이 기간에 고려인은 화투놀이를 많이 한다.

고려인의 전통 명절

고려인의 세시 행사는 조상 숭배와 추수 감사 제의적 성격을 지닌 명절로 구성되어 있다. 조상 숭배와 연계된 명절은 설날, 한식날, 추석날이다. 단오와 추석은 추수 감사 제의적 의미를 지닌 명절이다.

(1) 설날과 대보름

러시아인의 설날은 양력 1월 1일이지만, 고려인들은 음력 1월 1일을 설날이라고 한다. 러시아인 설날에는 고려인이나 러시아인, 카자흐인, 우즈베크인 할 것 없이 모든 사람이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행사를 한다. 12월 마지막 날 밤 아이들을 위해 중국에서 가져온 ‘솔낭구’[소나무]에 장식하고, 조그마하고 색깔 있는 등(燈)을 많이 달고 불을 켠다. 그리고 가족과 친척이 모여 음식을 나누어 먹으면서 장기 자랑을 하고, 밤을 지새우면서 새해를 맞이한다. 고려인은 주로 편새[만두], 열콩[팥보다 큰 콩]을 넣고 입쌀로 만든 시루떡, 돼지고기 등 일상 음식을 준비하여 먹는다. 러시아인은 쇠고기, 카자흐인은 양고기와 말고기 등을 먹는다.

고려인의 설날에는 해바라기 기름에 구운 지름굽이, 닭, 과실, 당근, 사탕, 과주리, 구운 물고기 등의 음식을 준비하여 새벽 1, 2시 사이에 차례를 모신다. 그러나 집에서 차례를 모시는 경우는 드물다. 차례를 지낸 뒤 자녀들이 조부모나 부모에게 세배하면 어른들은 “글도 잘 읽고, 앓지 말아라.”, “돈 많이 벌어라.” 등의 덕담을 하고 세뱃돈을 준다. 설날에는 화투놀이나 윷놀이를 많이 했는데, 윷놀이는 남녀가 함께하며 20년 전까지 행해졌다. 어른들은 골패놀이를 하기도 하고, 할아버지들은 시천놀이를 하기도 했다.

대보름 풍습은 러시아인이나 카자흐인에게 찾아보기 힘들고, 고려인은 대보름을 ‘다섯 가지 밥 먹는 날’이라고도 한다. 다섯 가지 밥은 대보름에 입쌀, 지장[기장], 찹쌀, 보리, 옥수수, 밥씨[수수] 등 여러 가지를 넣어 지은 밥인데, 지금도 나이 많은 사람은 다섯 가지 밥을 해 먹는다. 놀이로는 윷놀이, 공깃돌 놀이 등이 있다.

(2) 한식날

양력 4월 5일을 한식날이라고 한다. 이날은 모든 가족이 산에 가서 풀을 뽑고 흙을 올린다. 묘지의 봉분이 흙으로만 되어 있어서 건조한 기후 조건 때문에 비가 오면 많이 흘러내린다. 그래서 매번 흙을 올리는 일을 한식날에 한다. 고려인은 한식날을 ‘흙을 올린 날’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묘지의 봉분 위에 흙을 올릴 뿐만 아니라 봉분 주변의 시설물에 페인트칠을 하여 치장할 때도 있다.

고려인은 한식날에 모든 가족이 모여 제사를 지내기 때문에 이날을 가장 큰 명절이라고 생각한다. 제사 음식은 지름굽이, 닭, 술 등이고, 제사를 지내고 나서 곡을 하기도 한다. 상세[초상] 났던 집에서는 제사를 지내고 나서 어머니가 계신 경우는 어머니 집에서, 두 분 모두 돌아가신 경우는 어머니 집에서, 두 분 모두 돌아가신 경우는 부모를 모셨던 자식의 집, 대개 아들 집에 모여 음식을 나누어 먹고, 남은 음식은 친척들에게 싸 주기도 한다.

한식날은 고려인들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다. 명절이 가족의 혈연적 유대 관계를 돈독히 하는 기능을 수행한다면, 한식날만큼은 혈연적 유대뿐만 아니라 지연적 유대 관계를 돈독히 할 수 있는 날이다. 예컨대 멀리 나가 있는 자손들이 부모의 성묘를 위해 찾아오고, 마을에 거주하는 모든 고려인이 성묘를 위해 북망산[공동묘지]을 찾으면 친척은 말할 것도 없이 고려인끼리도 자연스럽게 서로 안부를 묻고 교제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기 때문이다. 따라서 고려인에게 한식날은 정체성과 동질성을 갖게 해 주는 계기가 되기 마련이다.

(3) 단옷날

5월 1일을 ‘마우재 단옷날’이라고 말한다. 소비에트연방 시절에는 이날 일하지 않고 음식을 나누어 먹고 춤도 추고 노래도 부르며 이틀간 놀았다. 놀이의 장소나 놀이꾼은 특별히 정해져 있지 않고, 소규모 단위로 모여서 놀았다. 이러한 풍습은 20년 전까지 지속되었으나 지금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고려인의 단옷날은 음력 5월 5일이다. 이날은 남녀가 산에 가서 제사를 지내고 먼 곳으로 놀러 가기도 한다. 단옷날에는 굴기뛰기[그네뛰기]를 하기도 하고,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면서 논다. 그리고 화투를 치기도 한다. 이와 같은 단오 명절의 행사는 지역에 따라 지금도 계속되고 있기도 하다.

(4) 추석

8월은 벌써 아침저녁이 선선하고, 9월이 되면 추워지기 시작한다. 음력 8월 15일이 추석 명절이다. 가족들이 산에 가서 묘의 풀을 뽑고 묘 앞에 음식을 차려놓고 제사를 지낸다. 제사 음식은 지름굽이, 닭, 술, 밥 1그릇, 과실, 과자, 물고기 등이며, 제사상에는 반드시 물고기를 올린다. 제사를 지내고 집으로 돌아와 일가친척이 모여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돌아가신 분을 생각하고 슬퍼하며 울기도 한다.

(5) 동짓날

12월 22일을 동짓날이라고 하며, ‘오구래 해 먹는 날’이라고도 한다. 이날은 ‘오구래’[동지 죽]를 먹는다. 오구래는 찹쌀 혹은 입쌀을 가루로 만들어 물로 반죽하여 만든 새알을 열콩으로 만든 국물에 집어넣어 만든 음식이다. 중앙아시아의 고려인은 지금도 오구래를 해 먹는다.

고려인의 연례행사

러시아와 중앙아시아의 고려인은 민족 전통의 명절 이외에도 현지에 적응하면서 여러 연례행사를 치러 왔다. 현지에 적응한 고려인의 연례행사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1) 남자의 날

2월 23일은 남자의 날로서 ‘군대 기념일’이라고도 한다. 이것은 사회주의 국가 시절 남자가 대부분 군인인 까닭에서 비롯된 명칭이다. 모든 민족이 남자의 날만큼은 여자들이 남자들에게 장미꽃과 선물을 사 주는데, 7~17세의 여자들은 남자들에게 꽃을 사다 주지 않고 향수, 책 등을 많이 선물한다. 특히 오빠나 아버지에게는 향수를 선물하고, 경제력이 있는 여자들은 옷을 선물한다. 이성 교제를 할 때는 여자가 남자를 초대해 음식을 대접하기도 하고, 이웃 사람들과 모여 함께 춤을 추면서 하루를 보낸다.

(2) 여자의 날

3월 8일은 여자의 날이며, 소비에트연방 지역 모든 민족의 여자들이 해방되는 날이라고도 한다. 이날만큼은 남자들이 여자들한테 선물하는데, 7~17세의 남자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여자에게 초콜릿, 사탕, 향수 등을 사 주고, 자식들은 어머니에게 향수, 수건, 옷, 꽃과 같이 고우면서 정성이 담긴 선물을 한다. 그리고 할머니와 누나에게도 선물한다. 7~17세의 아이들은 가족들한테 선물할 때 주로 꽃을 많이 사 주고, 직장에 다니고 경제력이 있는 남자들은 반지나 목걸이 또는 옷을 선물한다. 이날은 문화 궁전에서 여자들이 많이 놀고, 러시아인 남자들이 집 안 청소나 음식 준비 등의 일을 다 하는 데 비해, 고려인 남자는 말로만 위하지 집안일을 잘 도와주지 않는다.

(3) 어린이날

6월 1일은 어린이날이다.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선물하고, 음식을 사 먹으라고 돈을 주기도 한다. 그리고 어린아이들을 데려다가 기념식을 하기도 한다.

(4) 혁명 기념일

10월 25일은 혁명 기념일 혹은 공화국의 날이라고도 한다. 모여서 창가를 부르며 놀았다.

고려인이 한식을 가장 큰 명절로 쇠는 이유

한국에서 추석과 명절을 가장 큰 명절로 쇠는 데 비해 고려인은 한식을 가장 큰 명절로 쇤다. 이는 아마도 고려인의 세시 행사가 조상 숭배와 추수 감사 제의적 성격을 지니고 있는데, 한식이 이 두 가지 모두에 해당하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고려인은 설날과 추석도 조상들에게 예를 갖추는 날이지만, 특히 한식날은 고려인들이 북망산에서 조상에게 성묘하면서 비공식적인 만남을 통하여 혈연적이고 지연적인 유대 관계를 돈독하게 한다. 이는 한식이 지난 후 곧바로 농사를 시작해야 하는 특성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그 때문에 고려인들은 한식을 가장 중요한 명절로 인식하고 있다.

참고문헌
  • 이복규, 『중앙아시아 고려인의 생애담 연구』(지식과교양, 2012)
  • 전경수, 『까자흐스딴의 고려인』(서울대학교 출판부,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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