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S (독립국가연합)
특별한 이야기

전러시아고려인연합회[ООК]의 역사와 현재

분야 정치·경제·사회/정치·행정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지역 러시아  
시대 현대/현대
상세정보
정의

1999년 1월 설립된 러시아의 고려인 연합 단체인 전러시아고려인연합회의 역사와 현재 개관.

전러시아고려인연합회 이전 고려인 단체 결성 역사

소련에서 최초의 한인 단체는 1924년 소비에트 정부가 승인한 재소한인연합회[1924~1926]이었다. 그러나 민족의 이해를 기반으로 한 사회단체 조직 금지로 2년 후 청산되었다.

60여 년이 지난 1980년대 중반 이후 페레스트로이카 정책이 추진되면서 민족 사회단체가 결성되기 시작하였다. 그 움직임은 소련 시기인 1990년 5월 전소고려인협회[ВАСК]로, 그리고 소련 붕괴 이후에는 1999년 1월 전러시아고려인연합회[Общероссийсокое объединение корейцев, ООК]로 계승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소수 민족인 고려인들은 소련 사회의 체제 전환 움직임에 맞춰 민족 문화와 전통을 되살리고 민족적 생활 방식과 습성을 논하기 시작하였다. 게다가 1988년 서울 올림픽, 1989년 평양 청년학생축전이 열리면서 고려인들의 민족적 자긍심은 더욱 높아졌다. 고려인 사회 내부에 생성되기 시작한 민족의식은 곧 고려인 사회의 민족적 자기 이해를 옹호할 조직 결성 움직임으로 발전했다.

1989년 5월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모스크바 고려인협회[МКА][회장 신 A. S.]가 설립되었다. 민족적 자각과 사회 민주화가 확산되면서 고려인 사회는 연방 차원의 조직이 필요하다는 인식 속에 새로운 민족 사회단체를 구상하였다. 그 결과 1990년 5월 모스크바대학의 박미하일 교수를 중심으로 발기인대회를 열어 협회 정관을 준비하고 등록 서류를 갖추어 전소고려인협회[ВАСК][회장 박미하일]를 설립하였다. 소련의 각 공화국에 흩어진 고려인 사회단체를 연방 차원의 상위 조직으로 통합한 것이다.

전소고려인협회 창립대회[1990년 5월 19일~5월 20일]에서는 더 이상 소모적인 영토 자치제 문제를 거론하지 않을 것이며, 대신 한인 디아스포라가 당면한 실천적 문제를 국내외 상황에 맞게 다룰 것이라 천명하였다. 그리고 러시아 고려인의 새로운 민족 인식을 형성하고 민족 문화의 원류를 복원하며 러시아어와 한국어를 병용하는 모델을 정착시켜 러시아 고려인이 지닌 완전한 가치를 러시아 사회에 인식시킬 것을 결의하였다.

러시아 외 각 공화국에서도 민족 사회단체가 결성되기 시작하였다. 우선 협회 내지 문화 센터가 생겨났다. 카자흐스탄에는 ‘카자흐스탄 고려문화중앙협회’[회장 한 구리]가 그리고 우즈베키스탄에는 ‘우즈벡 공화국 고려문화협회’[회장 김 표트르]가 설립되었다. 1989년 평양에서 열렸던 청년학생축전에 참석했던 고려인들이 그해 11월 타슈켄트에서 조국통일촉진위원회[АСОК, 아소크]를 설립하였다. 조국통일촉진위원회 조직은 성격상 조국 통일을 가속화하기 위한 활동 방안을 강구하는 데 그 목적이 있었지만, 우선적으로는 조선어 교육과 민족의식 고취 사업에 치중하였다.

1991년 4월 26일 ‘탄압받은 민족의 복권’이란 러시아 연방법이 승인되었고, 1991년 10월 18일에는 탄압받은 이들의 명예회복법이 제정되었다. 이로써 탄압받은 민족의 시민적 권리와 명예가 회복될 기회가 생겼다. 그러나 1991년 12월 소련이 해체되자 독립국가연합 국가 간의 협력 문제가 현실화되었다.

소련 사회의 체제 개혁이 급속히 진행되면서 전소고려인협회의 활동 역시 제약을 받았다. 소련 붕괴 후 각 공화국에 산재해 있는 고려인 조직을 통합하는데 많은 무리가 따랐다. 각 공화국 간의 독립성이 강화되면서 공화국 간 상호 연대 가능성이 줄어들었다. 탄압받았던 시민에 대한 명예 회복이 정치적 선언을 넘어 법률적 토대까지 마련되었지만 공화국 간 분리로 종합적 협력 사업이 전개될 수 없었다. 탄압받았던 소수 민족들의 명예에 관한 러시아 연방법에 고무되었지만 소수 민족이 자신의 복권을 넘어 자기 권리 확보를 위한 사회 운동으로 발전시키는 것은 쉽지 않았다.

결국 1991년 2월 전소고려인연합회는 카자흐스탄 알마티에서 열린 제2차 대회에서 발전적 해산을 선언하였다. 비록 활동 기간은 짧았지만 전소고려인연합회는 소련이 러시아로 체제 전환하는 급변 상황에서 소수 민족 한인의 권익을 보장받기 위한 단합된 결집력을 보여 주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찾을 수 있겠다.

소련이 분열되자 구성 공화국과 그 속에 살던 민족 간 분리가 가속화되었다. 서로 다른 나라 국민이 된 민족 집단은 각자 자국 내에서 독자적으로 민족 사회단체를 결성하여 우선 자신들만이라도 단결하기로 하였다. 1991년 10월 6일 러시아에서 러시아고려인협회[회장 신 A. S.]가 설립되었다. 그리고 1992년 1월 12일 곧바로 법무부 등록을 마쳤다.

민족 사회단체 조직 움직임은 분리된 구성 공화국 간의 연대를 표출할 단체의 재결성을 모색하기도 하였다. 그 결과 1991년 11월 22일 하바롭스크에 모인 러시아 고려인 사회단체 대표들이 러시아 전체 고려인의 이익을 대변할 조직으로 전소고려인연합회의 재창립을 논의하였다. 이미 각 공화국에 분산된 고려인 사회단체 간 교류를 위해 1992년 2월 국제고려인연합회[МККА][회장 김영웅]가 전소고려인협회를 계승한다며 결성되었지만, 이와는 별도의 연합 조직이 모색된 것이다. 그 결과 1992년 7월 24일 모스크바에 다시 모인 고려인 사회단체 대표자들이 유라시아고려인연합회[ЕАК][회장 김 T. A.]를 결성해 8월 21일 등록까지 하였다.

그런데 이와는 별도로 러시아 영토 내 각 지역 협회와 문화센터들 간에도 통합 논의가 전개되면서 앞서 창립된 러시아고려인협회는 1993년 7월 러시아고려인협회[Единая Ассоциация корейцев России; АКР][회장 이 알렉]로 통합되었다. 통합된 러시아고려인협회는 고려인들의 민족적 자긍심 고취, 유대 강화 그리고 강제 이주와 숙청에 따른 희생자의 명예 회복을 주요 목표로 활동하였다. 즉 민족 탄압에 대한 유산을 청산하고 고려인 사회의 자립과 민족어와 민족 문화의 부흥과 발전을 도모하는 활동을 전개한 것이다.

러시아고려인협회는 명실상부한 러시아 전 지역, 즉 극동의 연해주사할린, 시베리아, 볼가강 유역, 우랄, 북캅카스, 모스크바 등 한인 분포 지역의 80% 이상을 포용하는 거대 조직으로 발전하였다.

러시아고려인협회는 국제고려인연합회와 더불어 다른 공화국 내에 존재하는 고려인 사회의 재통합 활동을 시작하였다. 이들은 조직 재정비와 더불어 민족 문화 부흥을 위한 제반 활동을 주요 사업으로 실행하였다. 또한 이들은 소수 민족 한인이 러시아의 정치적, 법적 테두리 속에서 제 지위를 획득할 수 있도록 노력하였다.

1995년 4월 14일 러시아 연방법인 ‘사회단체법’이 채택되어 러시아 내 다양한 민족 사회단체가 러시아 정부의 관리 아래 들어가게 되었다. 수십 개의 지역문화센터를 갖춘 고려인의 지역별 협회[통합된 러시아고려인협회[АКР], 국제고려인연합회[МККА], 조선통일촉진협회[АСОК], 국제한인우호친선협회, 여성고려인협회 등]와 각종 직능별 한인 사회단체[고려인과학기술협회, 러시아한인기금, 이산가족협회 등] 등이 정식 등록하였다.

전러시아고려인연합회 결성

러시아 정부는 1996년 6월 ‘민족문화자치회법’을 제정하여 소수 민족의 민족 문화와 전통 유지를 주목적으로 하는 정책을 추진하였다. 그리하여 소수 민족의 지방 자치를 법적 테두리 속에서 실현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효과가 나타났다. 어느 단체건 민족 구성원이 단체를 구성하여 등록할 경우 민족 문화와 특성 그리고 언어 등을 자유로이 발전시킬 수 있도록 하였다. 고려인의 경우 1997년 지역 단위 민족문화자치회를 구성하였고, 모스크바 외에도 점차 연해주, 이르쿠츠크, 사할린 등으로 확대하여 조직을 결성하였다. 고려인 민족문화자치회는 지방 단위를 넘어 연방 단위의 민족문화자치회를 구성하여 운영 중에 있다.

다만 이들 단체는 민족 내부의 상호 부조와 민족 자치를 추진하기 위해 결성되었지, 한인 사회 전체의 사회 정치적 이해를 도모하기 위한 조직은 아니었다. 결국 러시아 영토 내 민족 사회단체의 자체 이익을 위한 정치 참여는 필요하다 여겼다. 그 결과 탄생한 것이 전러시아고려인연합회[ООК]였다.

전러시아고려인연합회 활동

전러시아고려인연합회는 1999년 1월 개최된 러시아고려인연합회[АКР]의 제4차 연합대회에서 정관 재정리와 명칭 변경을 의결함으로써 재출범하였다. 대의원회의 의장은 조 바실리가 선출되었고, 1999년 7월 15일 법무부에 정식으로 등록하였다. 전러시아고려인연합회는 민족 간 평화와 친선의 강화, 러시아 국민으로서 자긍심 함양, 애국심과 국제주의, 인본주의, 도덕 그리고 민주주의 전파를 기본 목적으로 삼았다.

전러시아고려인연합회는 법무부에 정식 등록을 마친 후 러시아 연방 전역에서만이 아니라 독립국가연합 국가에도 지부를 건설하였다. 그 결과 창립한 해 벌써 40여 개의 지부[모스크바 4개, 하바롭스크 5개, 연해주 7개, 스타브로폴 4개 등]를 건설하였고 점차 확대하였다.

전러시아고려인연합회는 단순히 어느 한 민족의 임의적인 상부상조 단체가 아니라 전 러시아에 걸쳐 사회 정치 활동을 수행할 조직으로 재탄생하였다. 러시아 연방 법인사회단체법 테두리 안에서 활동하며 민족 간 협력 외에도 한민족의 발전과 적극적인 사회 활동으로 한인의 완전한 명예 회복을 목표로 활동하고 있다.

참고문헌
  • 보리스 박·니콜라이 부가이, 『러시아에서의 140년간-재러 한인 이주사』(김광환·이백용 옮김, 시대정신, 2004)
  • Ли О. А., 「От Всероссийской конфедерации корейских ассоциаций - К Евразийской ассоциации корейцев ”КОРОЁН“」(『Информационный вестник』Вып. 2, М., 1992.)
관련항목
이전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