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S (독립국가연합)
특별한 이야기

소련이 붕괴한 후 중앙아시아의 고려인들의 재이주는 동쪽과 서쪽 양편으로 이루어집니다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지역 CIS  
시대 현대/현대
상세정보
정의

구 소련 붕괴 이후 중앙아시아 고려인들의 러시아로의 이주 경향.

개설

구 소련 붕괴 이후 독립한 중앙아시아 각 공화국에서 러시아 연방 공화국으로 이주한 고려인의 수는 대략 4만여 명을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당시 고려인의 인구를 약 50만 명으로 추산했을 때, 8% 이상의 고려인들이 재이주를 감행한 것이다. 그리고 재이주는 두 방향 즉 조상들의 땅인 러시아 극동 연해주와 흑토 지대로 농업에 적합했던 러시아 남부 볼고그라드로 나누어서 이루어졌다.

소련 붕괴 이후 러시아연방 공화국 고려인 인구 변화의 추이

러시아 연방 공화국에 거주하고 있는 고려인들의 인구수가 정확히 어느 정도인지 알기는 어렵다. 공식적인 통계가 있다 하더라도 거주 형태의 분산성과 유동성이 워낙 강하고 거주 등록조차 하지 않은 인구가 많아 정확한 통계치를 얻기 어렵기 때문이다. 게다가 고려인들은 다른 유입된 소수 민족인 독일인이나 폴란드인처럼 러시아 연방을 구성하는 정치적 주체가 아니기 때문에 총인구 조사의 인구 통계를 위한 측정 항목으로 설정되지도 않았다. 따라서 소수 민족의 인구 통계는 단지 민족어 사용 인구로 추정할 수밖에 없다.

그동안 1989년 소련 붕괴 이전에 실시된 총인구 조사 결과치가 이 분야 연구의 기초 자료가 되어 왔다. 여기에 해마다 반영한 인구 이동의 결과를 인구 통계 자료로 활용하여 왔다. 그런데 지난 2002년 말 러시아 연방은 독자적으로 총인구 조사를 실시하여 새로운 인구 통계치를 내놓았다.

1989년 소련 총인구 조사 자료에 의하면 소비에트 러시아 연방의 총 인구는 1억 4740만 명이었으며 그중 고려인은 10만 7000명이었다. 고려인의 인구는 소비에트 러시아 연방 총인구의 약 0.07%를 차지하고 있었다. 한편 당시 소련에 거주하고 있던 고려인들은 43만 9000명이었으므로 러시아에 거주하고 있던 고려인의 인구 규모는 소련 전체 고려인 인구의 24.37%, 즉 약 1/4 조금 못 미치는 정도였다. 물론 대다수 고려인은 중앙아시아의 우즈베키스탄과 카자흐스탄에 집중되었다.

그런데 2002년 말 러시아 연방이 실시한 총인구 조사 결과 러시아에 거주하는 한인들은 14만 8000여 명으로서 13년이 지나면서 약 4만여 명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현 단계 독립국가연합 전체에 거주하는 고려인을 약 50만 명으로 추산한다면, 러시아에 거주하는 고려인은 전체 독립국가연합 고려인의 약 29.4%를 점하고 있는 셈이다. 고려인의 인구 증가를 통해 우리는 고려인이 러시아 연방 내에서 차지하는 인구 분포와 규모 면에서 대단한 양적 증가가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그만큼 러시아로의 유입이 컸다고 볼 수 있다.

즉, 소련 붕괴 이후 독립한 중앙아시아 각 공화국에 거주하던 고려인들 중 4만 명 이상이 중앙아시아를 떠나 러시아로 이주하였다. 그리고 러시아로의 이주는 두 방향, 즉 동쪽의 연해주와 서쪽의 볼고그라드 방향으로 이루어졌다.

고려인 이주의 두 방향 -연해주와 볼고그라드

러시아 연방은 개혁 개방과 체제 전환의 와중에 엄청난 인구 이동을 경험하였다. 인구 이동의 큰 흐름은 러시아 근외국가(近外國家)[러시아 이외의 독립국가연합 국가와 발트 3국]에서 러시아로 이동하는 것이었고 다시 러시아의 원외국가(遠外國家)[해외]로 이어졌다. 러시아에서 원외국가로 유출되고 있는 인구는 1992~1997년간 약 61만 4200명인 반면에 유입된 인구는 단지 2,462명이었다. 소연방 붕괴 이후 근외국가에 잔류된 ‘새로운’ 소수 민족이자 ‘분열된 민족’이 된 2530만 명의 러시아인 다이아스포라 역시 러시아 근외국가에서 러시아로 역이주하고 다시 러시아를 경유하여 미국, 독일, 이스라엘 등의 서방 국가로 이어지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고려인의 인구 이동 현상도 위와 다르지 않았다.

고려인들 역시 중앙아시아[특히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과 타지키스탄]에서 러시아로 그리고 러시아에서 다시 해외로 움직이는 경향을 보여 주고 있다. 우즈베키스탄이나 카자흐스탄은 일종의 경유지였고 러시아는 기착지였기에 러시아의 몇몇 지역은 상대적으로 인구 증가 폭이 크게 나타나는 지역적 특성을 드러냈다.

그리고 이동해 간 러시아 지역의 경우 러시아의 극동연방관구[특히 연해주]나 남부연방관구[특히 볼고그라드주] 지역으로 이동 방향이 집중하는 경향을 보여 주고 있다. 볼고그라드나 연해주 지역으로 이주해 온 사람들은 다른 지역의 이주민들보다도 보다 정치적인 이유로 인하여 이주하였다. 경제적인 이유는 대부분의 지역 이주민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지만, 위의 두 지역은 로스토프-나-돈우나 모스크바의 이주민들에 비해 자녀 교육이 이주 원인이 된 비율이 상대적으로 낮았다. 이러한 결과는 볼고그라드 지역과 연해주 지역으로 이주해 온 사람들이 이주 지역에 대한 선택의 여지도 없이 ‘내몰린 이주자’들이 상대적으로 많았음을 증명한다.

러시아 극동 지역은 과거로부터 절대적으로 인구가 부족하였다. 소연방이 붕괴된 이후 극동 지역의 주민은 더욱 줄게 되었다. 인구 유출은 심각했지만 이를 대체할 자연 인구가 증가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외부로 인구가 유출되는 현상이 심화되었다. 1991~1992년 800만 명을 상회하던 극동 인구는, 2002년 통계 조사에서 669만 3000명으로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1991년 극동 지역의 인구가 최고에 도달했을 때가 805만 7000여 명이었으므로 그때보다 약 136만 4000여 명이 줄어든 셈이다.

반면에 러시아 남부의 볼고그라드주는 러시아의 젖줄인 볼가강과 돈강 사이의 비옥한 흑토 지대를 끼고 있어 농업을 생업으로 삼는 한민족에게 매우 적합한 환경을 제공하고 있다. 이미 1960년대 중앙아시아에서 이주해 간 한인들 약 4만 명이 볼고그라드를 위시하여 로스토프나 아스트라한 등에 분포되어 거주하고 있었다. 볼고그라드는 다른 지역보다 상대적으로 북쪽의 건조한 기후 지대에 위치해 있어 한인들의 이주가 드물었지만, 최근 적극적인 이주민 유치 정책으로 인하여 중앙아시아, 그중에서도 우즈베키스탄과 타지키스탄 고려인들의 발길을 잡고 있다.

북카프카즈나 볼가강 유역은 한민족들의 전통 산업인 농업 여건이 양호한 곳으로 계절 이동 농업의 일종인 고본질(固本質)[고본지]을 해 오던 곳이다. 현재 볼고그라드 주의 경우 타지키스탄에서 1,000여 명의 유민이 거주하고 있다. 이들은 주로 개인적 차원에서 유입되어 왔는데 주정부의 도움은 받고 있으나 정착을 위한 노동 직업의 확보, 사회적 보장 등 정착하기 어려운 상태에 놓여 있다. 사라토프주의 경우 550명 정도의 한인들에, 1999년 초 카자흐스탄[13명], 타지키스탄[13명], 우즈베키스탄[31명] 등에서 57명의 강요된 이주자가 증대되었다.

1990년대 고려인 이주의 특징

1990년대 전반기와 후반기에 있어서 고려인 인구 이동 현상은 서로 다른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전반기의 이주는 현지 사회의 민족주의적 갈등 내지 내전이라는 위협 상황을 벗어나 탈출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졌다. 1992~1994년 타지키스탄에서 발생한 내전으로 인한 고려인 난민들은 대략 1만 명에 이르렀다.

연해주로 이주민이 유입되기는 1992년부터 1994년 사이에 최고점에 달했다. 이들은 러시아 이외의 근외국가 출신들로서 내전과 민족 갈등으로 정세가 불안했던 타지키스탄 출신들이 대부분이었다. 이들은 이주의 불가피성이 인정되어 거의 모든 이주민들이 난민의 지위를 획득하였다.

1992~1998년간에 1,722명[701가구]의 난민과 2,188명[963가구]의 강요된 이주민이 연해주로 몰려왔다. 1999년 초에 이르자 연해주로 몰려온 난민 내지 강요된 이주민들은 모두 합쳐 4,258명으로 늘어났다. 러시아 연방 내부의 분쟁 지역, 즉 북캅카스나 기타 민족 운동의 움직임이 강한 민족 지역에서 이탈한 주민들이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환경의 극동 지역이나 볼가강 유역을 택한 것이다.

그런데 1990년대 후반부 연해주로 이주해 온 사람들 중에는 새로운 경향이 눈에 띠었다. 상당수의 이주민들이 내전이나 군사적 충돌 혹은 민족차별로 인한 분쟁지역을 탈출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1996년 이래 연해주로 이주해 들어온 사람들은 전쟁과 같은 극도의 위기 상황보다는 미래 가족의 경제적 환경의 개선과 자녀 교육 등을 이유로 이주해 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이들은 주로 중앙아시아의 타지키스탄을 제외한 우즈베키스탄과 카자흐스탄 출신이 주를 이루며 발트 지역에서 이주해 온 자들이 추가되었다. 즉 외부의 억압적 환경보다는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 이주를 결정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경향은 전체 이주민들의 약 71%를 차지할 정도로 1990년대 후반기를 지나면서 일반화되었다. 그렇다고 이주민들이 거주하던 옛 지역이 민족적 갈등이 없어진 것은 아니다. 이 지역은 언제나 분쟁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상존하나 직접적인 동기가 없기 때문에 잠복해 있는 것이다. 물론 바로 그러한 위기 상황이 인구 유출을 강요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연해주로 재이주한 고려인

고려인들의 주요 인구 이동 지역은 1937년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되기 전에 최대의 한인 다이아스포라를 형성하고 있던 연해주 지역이다. 연해주의 고려인 인구는 1970~1980년대 꾸준히 8,000여 명을 유지하여 1989년 당시 연해주의 고려인은 8,454명 정도 거주하고 있었다. 소련 붕괴 이후 고려인의 유입이 증가하기 시작하여 점차 상당한 인구 분포를 갖게 되었고 주로 연해주 남부의 대도시[블라디보스토크, 우수리스크, 나홋카, 아르세니예프, 파르티잔스크, 스파스크 지구] 주변에 거주하고 있다.

고려인 이주민들은 연해주로 유입되어 오는 전체 이주민들의 약 2%를 차지하지만 이주해 오는 인구수가 급격히 줄기 시작하였다. 연해주로의 고려인들의 유입은 1994~1995년경에 최고조[각각 1,222명, 1,339명]를 이루었다가 이제는 하강 곡선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 통계는 연해주 통계국이 집계한 내용으로서 이주민 전체 규모를 포괄하지 못하고 있다. 왜냐하면 고려인들의 상당수가 공식적인 거주증을 취득하지 않고 있거나 서류 준비가 미비한 상태에서 공식적인 거주 등록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대략 40% 정도의 허수를 감안한다면 현재 한인 이주민 인구수는 훨씬 많다고 볼 수 있다.

연해주로 이주해 오는 고려인은 과거 강제 이주라는 국가적 폭력에 희생되어 연해주를 떠날 수밖에 없었던 세대들이자 그 후손들이다. 이들은 소비에트정부에 의해 최소한의 시민권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인권 탄압의 상태에 놓여 있다가 최근에 명예 회복되었다. 이들에 대한 보상은 정착촌 제공이라는 방법으로 나타났다. 1997년은 모스크바 중앙 정부는 고려인들의 연해주 정착을 위해 군 병력이 주둔해 있다가 자리를 비운 8곳의 군 병영지를 무상 임대해 주었다. 연해주 정부가 제공한 고려인 정착촌 예정 지역은 라즈돌리노예(Раздольное), 플라토노프카(Платоновка), 포포프카(Попопка), 보즈드비엔카(Воздвиенка), 오레호보(Орехово), 두홉스코예(Духовское), 노보네즈너(Новонездно), 크레모보(Кремово) 등으로서 명예회복법의 적용을 받은 고려인들이 우선적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내어준 군 병영지였다. 이는 1998년 1월 19일 ‘연해주 지사령 No. 64-P’에 의해 “연해주에 소재한 해체된 군사 도시를 ‘연해주고려인재생기금’에 이양하여 무상으로 활용하게 하는 것에 대한 명령”에 따라 현실화되었다. 이 같은 조치는 비록 러시아 중앙 정부가 한인명예회복법안에 따라 취한 것이었지만 노동자를 유치하거나 정착촌을 지원하려는 연해주 정부의 이해가 맞아떨어지면서 전격적으로 추진되었다.

그러나 연해주 지역에 한인 정착촌 사업이 성공적으로 추진되기 위해서는 다음의 문제점들이 있다. 중앙 정부가 제공한 군 병영의 건물과 토지는 주정부의 국가자산관리위의 재산권 규제에 묶여 정착을 위해 이주해 온 고려인들에게 영구 임대를 해줄 수 없는 형편에 놓여 있다. 2000년 이러한 문제점을 직시한 고려인 단체가 명예회복법에 따라 제공된 토지 및 건물에 대한 사용권을 보장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러시아 정부의 특단의 조치가 필요한 실정이다. 따라서 러시아 정부의 명예 회복된 고려인들에 대한 종합적인 법적 조치가 구체적으로 제시될 수 있도록 명예 회복 대상자가 지닌 특수 관계를 강조할 필요가 있다.

이곳의 임시 정착촌은 거주지의 기본 시설인 상하수도, 전기, 가스 등 기본적인 사회 보장 인프라가 구축되어 있지 않아 기본적인 경제생활 권리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가뭄과 홍수가 연이어 발생하였어도 사회적 보상을 전혀 받지 못하고 있다. 더 중요한 것은 재이주한 이후 러시아 거주 지역에서의 거주 등록과 국적을 취득할 수 없어 취업은 고사하고 교육이나 의료 보험 등의 혜택조차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정착촌 사업이 성공하려면 우선적으로 순수 한인촌을 건설한다기보다는, 가능하면 러시아 현지 주민들과의 공존을 모색하는 방향에서 진행되어야 한다. 이런 면에서 우정마을에 러시아 주민이 입주한 것은 매우 바람직한 현상이다. 더 나아가 정착촌은 외부의 지원이나 도시에서 경제 생활을 영위하기 위한 베드타운 역할에만 의존하는 공동체가 아닌 자립 기반을 세울 수 있는 영농 사업이 전개되어야 한다. 최근에 이러한 방향으로 논의가 진행되고 있음은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볼고그라드 지역으로 이주한 고려인

근외지역, 특히 중앙아시아에서 이주하는 또 다른 이동 방향은 러시아 남부의 볼고그라드주 지역이다. 이 지역은 소비에트 시대인 1960년대부터 이미 많은 한인들이 계절 이동 농업[일명 고본질이라 부르며 고본지, 고봉질이라고도 한다.]을 통하여 이주 정착해 살고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호감을 주는 지역이다.

그동안 고려인 이주민들은 흑토 지대 중에서도 상대적으로 농업 환경이 양호한 러시아 남부 지역, 즉 로스토프-나-돈우나 크라스노다르스크 지역에 집중 정착해 왔다. 크라스노다르스크 주에 3,000명, 다게스탄공화국에 800명, 북오세친 공화국에 5,000명 이상, 로스또프-나-돈우 지역에 2만 7000명, 스타브로폴 지역에 1만 명, 카바르진노 발카르에 5,000명 등으로 널리 분포해 살고 있다.

그러나 최근에는 러시아 남부 흑토 지대에 있으면서도 상대적으로 외면되었던 볼고그라드 지역이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인구 269만 9000명이 거주하고 있고, 볼가강 중류의 흑토 지대를 끼고 있어 연해주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농업 활동 조건이 양호하다. 주로 농업에 종사하는 고려인들이 기름진 땅과 농사에 알맞은 기후 조건을 갖춘 볼고그라드 지역에 이주해 오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었다. 게다가 최근 주정부가 적극적으로 외부로부터 노동력을 유치해 온 노력 덕분에 이 볼가강 유역의 농업 여건은 연해주보다도 훨씬 양호해졌다.

러시아 정부 이민국의 공식 통계에 따르면, 볼고그라드주에는 타지키스탄으로부터 넘어온 난민 내지 강요된 이주민들 약 1,000명[심지어 2,000명까지도 봄]이 체류하고 있다. 이들은 정부의 지원으로 정착과 직업 알선, 그리고 사회적 보장 지원을 받아 생활하고 있다. 이들은 중앙아시아 지역을 떠나면서 거주 등록에 필요한 서류를 제대로 갖추고 있지 못해 거주 등록에 따르는 각종 세제상의 혜택이나 직업 정착, 사회 보장 혜택 부문에서 불이익을 당하고 있다.

볼고그라드주 이민국이 파악한 1999년 당시 고려인은 약 2만 명 정도였지만 농번기에는 3~4만 명을 넘는다고 추산한다. 이들 가운데 난민으로 공식 분류된 고려인은 2001년 2월 말 현재 약 312명 정도이다. 이들은 1960년대 초부터 정착하기 시작한 토박이 그룹 약 5,000명과는 달리 1990년대 초, 특히 1992~1995년 사이에 타지키스탄의 내전을 피해 대거 이주해 온 고려인 ‘난민’들과 ‘강요된’ 이주민들 그리고 우즈베키스탄의 카라칼파키아에서 들어온 약 200여 명의 이주민들이 제2 그룹을 형성하고 있다. 이들은 볼고그라드주에 거주하는 고려인들 중에서, 가장 사회 경제적 근거가 열악하여 긴급한 지원이 필요한 집단이다.

그러나 볼고그라드로 이주하고 있는 고려인들은, 볼고그라드 지역이 고려인이 강제 이주당할 당시의 추방지가 아니기에, 탄압 받은 민족 구성원으로서 새로 이주해 온 고려인들이 원거주지로 귀환하여 정착하면서 누리는 필요한 제반 혜택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 강제 이주에 대한 명예 회복이 희생된 당사자들과 그 후손들에게 일괄 적용되지 못하게 된 것은 여러모로 시정되어야 할 것이다.

결국 볼고그라드 지역의 고려인들은 비록 강제 이주당했다가 명예 회복된 복권자들로서 특별 지원을 법적, 재정적 지원을 받지 못한 채 난민 내지 ‘강요된 이주민’의 어려운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비록 이들이 난민 지위를 획득했다 하더라도 주거지의 고립성 및 지원 물자의 열악함으로 거의 지원을 받지 않는 것과 다름없기도 하다.

참고문헌
  • 심헌용, 「고려인의 신이주와 NGO의 역할–연해주와 볼고그라드」(『한국시베리아연구』11, 배제대학교 한국-시베리아센터,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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