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문예』

원어 항목명 韓国文芸
한자 韓國文藝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유형 문헌/연속 간행물
지역 일본  
시대 현대/현대
상세정보
창간 시기/일시 1962년 11월 10일
폐간|종간 시기/일시 1963년 11월
원어 항목명 韓国文芸
발행인 김경식(金慶植)
정의

1962년 재일 한인 작가들이 창간한 문예 전문지.

창간 경위

『백엽(白葉)』 동인회에서 분리되어 단순한 문학 잡지로 창간되었다. 발행은 한국 문예사로, 창간호 편집인은 시인 김윤(金潤), 발행인은 소설가 김경식(金慶植)이 맡았다. 김경식은 1970년대 이후 제작한 「어머니」, 「통일의 염」, 「고발」 등 한국 민주화 운동을 소재로 한 영상 작품으로 유명하며, 『한국 문예』 2호와 3호 편집인 겸 발행인을 맡았다. 창간 멤버로는 정달현(鄭達鉉), 김학현(金学鉉) 등이 있다.

잡지 이름이 『한국 문예』이긴 하지만 재일 한인이 일본과 한국을 자유롭게 오갈 수 없었던 시기였기 때문에 한국 국내 문학계와 연관은 없다. 재일 한인 집필자의 과반수 이상이 1961년 재일 남북 합동 문화제의 찬동자로,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나 북한과 거리를 두고 있기는 하지만 재일본대한민국민단이나 한국을 비판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구성/내용

재일 한인 작가의 문학 작품은 김윤의 시 3편, 안도운의 희곡 한 편, 김경식의 소설 2편 등 게재 편수가 아주 적지만 매호마다 게재되는 미술, 연극 음악 등 각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는 재일 문화인들의 좌담회는 당시 한국계 문화인들의 실상을 알 수 있는 좋은 정보원이 되었다.

『한국 문예』는 일본어로 간행됐는데, 창간호의 편집 후기를 보면 일본에서 나고 자란 재일 한인 2세 독자들을 위해 일본어판으로 만들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950년대 이후 조선어[한국어] 교육이 활발히 진행되고, 조선어 작품도 왕성하게 발표된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주변 언어 상황과는 많이 다르지만, 일본에 있는 재일 한인 전체를 조망해 보면 민족 교육을 받은 2세가 압도적으로 적었기에 『한국 문예』 편집부의 판단은 현실적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당시 재일 한인 2세 독자가 얼마나 『한국 문예』를 읽었는지는 알 수 없다.

변천과 현황

『한국 문예』는 창간호 1962년 11월, 제2호 1963년 5월, 제3호 1963년 11월로 총 3권 간행되었다. 『백엽』에 대항하는 형태로 창간되었지만 결국 1964년 『백엽』보다 빨리 종간되었다.

의의와 평가

1950년대 이후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계열이 아닌 사람들에 의해 창간된 첫 문예 전문지였으며,『한국 문예』에 실린 소설이나 논평 번역은 한국 문학을 일본에 소개하는 선구적인 시도였다고 평가된다.

참고문헌
  • 『在日朝鮮人文学資料集: 一九五四~七〇』(緑蔭書房,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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