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절

원어 항목명 朝鮮寺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언어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일본  
시대 현대/현대
상세정보
원어 항목명 朝鮮寺
정의

1940년대부터 재일 한인들이 일본의 도시 근교나 산기슭에 만든 절.

개설

조선 절은 제2차 세계대전 중인 1940년대에 들어 일본의 오사카부[大阪府], 교토부[京都府], 나라현[奈良縣]의 경계에 걸친 이코마산[生駒山] 기슭에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재일 제주도 출신자 중에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주거 지역인 오사카시 이쿠노구[生野區]에서 가까운 이코마산 지역에 절을 세우기 시작하였다. 해방 후에도 오사카 지역에 많은 조선 절이 건립되어 1960년대 중반에는 40~50개, 1980년경에는 65개 정도로 늘었는데, 대부분이 제주도 출신자의 소유였다. 2000년대에 간사이[關西] 지방에는 이코마산 기슭에 약 60곳, 효고현[兵庫縣] 고베시[神戶市] 롯코산[六甲山]에도 몇 곳 있었으며, 간토[關東] 지방에는 도쿄도[東京都] 하치오지시[八王子市]의 다카오산[高尾山] 중턱과 사이타마현[埼玉縣] 오고세정[越生町]에 몇 곳이 있었다.

제주 사람들은 불안정한 바다 생활로 인해 원래 무속 신앙이 강하였는데, 이주지인 일본에서도 무속적 생활 양식을 유지하며 생활하였다. 조선 절에서는 한국의 무속과 불교 및 일본의 수험도(修驗道)[일본 고대 산악 신앙에 기초한 주술 종교]가 혼합된 독특한 굿이 행해지고 신자는 여성이 많았다. 대부분의 조선 절은 소규모로 중심에 불상을 모신 본당과 굿방이 있는데, 외관은 언뜻 보면 일반 민가나 집회소와 구별하기 힘든 경우가 많다. 주위에는 칠성당, 산신당 등 한국 사찰 특유의 건물들이 세워져 있다.

또한 폭포를 이용한 수행장이 있었는데, 해방 후 심방[무당], 보살, 스님이 기존의 수험도 계통의 폭포 수행장에서 수행하여 절을 이어받았기 때문이다. 조선 절은 불교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대부분 무속업이 중심이다. 오사카에 정착한 재일 제주인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 일본의 불교 문화와 한국의 무속 신앙을 습합시키면서 형성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창립자의 대부분이 사망하여 쇠퇴한 절도 적지 않지만 창립자의 자녀나 한국에서 온 승려가 주지가 되어 유지하고 있다.

참고문헌
  • 임영언, 「재일 제주인의 정체성과 제주도와의 경제적 교류」(『재일 제주인과 마이너리티』, 제주대학교 재일제주인센터, 경인문화사, 2014)
  • 飯田剛史, 『在日コリアンの宗教と祭り: 民族と宗教の社会学』(世界思想社,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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