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언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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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일본 |
시대 | 현대/현대 |
재일 한인 사이에서 제사를 의미하는 제주도 방언.
재일 한인은 해방 후 심한 일본 정부의 차별 정책 속에서 살았다. 일자리를 얻지 못한 재일 한인은 친척들과 결속하여 영세한 가내 공업을 경영하며 지냈다. 열악한 환경과 장시간의 중노동을 이길 수 있었던 힘은 가족 간의 끈끈한 결속이었다. 특히 싯케는 제주도 출신자들의 결속을 유지할 수 있게 해 주는 동력원이었다. 1941년생 재일 한인 2세 한정이(韓正二)는 “싯케가 있으면 이웃사람들과 친척들이 많이 왔다.”라고 하며 어린 시절 제사 때의 모습을 증언하였다.
제주도의 가족과 친족은 한국의 전통적인 가족과 친족 제도에 비해 부계 혈연 의식이 미약하다. 그러나 조상 제사를 중시 여기고 사후 후손에게서 제사와 명절을 받고자 하는 의식이 상당히 강하여, 아들 없이 과부가 되거나 이혼을 한 여성들 중에는 첩이 되어서라도 아들을 얻고자 하는 사람도 있다. 죽어서 “물 한 모금이라도 얻어먹어야” 한다는 말에서 드러나듯이 제주도 사람들에게는 제사 명절에 대한 의식이 강하게 깔려 있다. 심지어 혼인을 미처 하지 못하고 죽은 자에게도 사후 혼사를 시키고 입양을 행하여 그 후손으로 하여금 제사 명절을 지내도록 최선을 다한다.
재일 한인들의 제사는 육지 출신자와 제주도 출신자 간에 차이를 보였다. 일부 제주도 출신자들은 기제사를 지낼 때 장남은 아버지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고, 차남은 어머니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냈다. 이렇게 제사를 분할하여 지내는 관행은 제주도 사람들의 생활 습관과 관계가 깊다. 제주도에서는 제사와 명절 때 지역차가 있기는 하나 자식들이 분할 봉사를 한다. 제사권이 특정한 자손에게 고정되어 있지 않고 상황에 따라 봉사자가 바뀔 수 있다는 점이 매우 큰 특징이다. 최근에도 제사에 대한 의식은 여전히 강하게 남아 있지만, 아버지와 어머니의 제사를 합하여 지내거나 기제사를 줄이는 등의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