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 항목명 | 在日本朝鮮蹴球団 |
---|---|
한자 | 在日本朝鮮蹴球團 |
분야 | 문화·교육/체육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일본 |
시대 | 현대/현대 |
설립 시기/일시 | 1961년 |
---|---|
해체 시기/일시 | 1999년 |
개칭 시기/일시 | 2002년 |
원어 항목명 | 在日本朝鮮蹴球団 |
성격 | 축구단 |
1961년 결성된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산하의 재일 한인 축구 클럽.
1961년에 결성된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在日本朝鮮人總聯合會) 산하의 축구 클럽이었다. 실력이 뛰어나 가마모토 구니시게[釜本邦茂], 모리 다카지[森孝慈] 등 일본 대표가 포함되어 있었다. 대학 축구, 천황배, 전일본 선수권의 3관왕에 빛나는 와세다 대학[早稻田大學] 축구부와 아마추어 최강으로 인정받는 요미우리[讀賣] 클럽 등을 물리쳐 ‘환상의 일본 최강팀’이라고 불렸다. 또 1980년의 모스크바 올림픽 예선 출전 등 조선 민주주의 인민 공화국의 축구 대표팀에 많은 선수들을 공급하였다. 1986년 구단이 700승을 달성하였다. 그러나 아무리 승리를 거두어도 공식 시합에 출전할 수 없는데다가 자금난 등으로 인해 선수들의 사기가 저하되면서 1999년 실질적으로 활동이 중단되었다. 1999년이 되자 재일본조선축구단은 환경 변화와 재정난으로 사실상 해산할 수밖에 없었다. 2002년에 FC 코리아로 다시 창설되었다.
1990년대 말 이후 조선대학 축구부 선수를 중심으로 한 비상설 팀으로 활동했으나, 2002년 도쿄 조선 축구단과 통합하여 FC 코리아로 재출발하였다. 한편 FC 코리아는 2009년 현재 간토[關東] 사회인 1부 리그에서 활동하고 있다.
선수 전원이 외국 국적으로 일본 사회인 리그에 가입이 허가되지 않았으나, 친선 시합에서 일본의 강호를 차례로 물리치면서 재일 코리안 동포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