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 항목명 | 共同応援団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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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共同應援團 |
분야 | 문화·교육/체육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일본 지바현 |
시대 | 현대/현대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91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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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어 항목명 | 共同応援団 |
1991년 일본 지바현에서 개최된 제41회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서 남북단일팀 응원과 민족 화합을 위하여 재일본대한민국민단과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주도로 구성된 응원단.
재일본대한민국민단과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의 교류는 4·19 혁명이 일어나자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측과 재일본대한민국민단이 협의하여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와 재일본대한민국민단의 구성원들이 조국의 평화 통일을 기원하는 남북문화교류촉진합동문화제를 연 것이 시작이었다. 그 후 남한 정부의 주도로 7·4 공동 성명이 발표되자,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는 이를 지지하는 담화를 발표하였으며, 재일본대한민국민단과 공동으로 7·4 공동 성명을 지지하는 재일 한인들의 모임을 도쿄에서 개최하였다. 3·1절 70주년 행사 공동 개최를 제의하기 위해 1989년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대표단이 재일본대한민국민단 중앙본부를 방문하였고, 재일본대한민국민단과의 협의를 통하여 1991년 제41회 치바 세계탁구선수권대회의 공동응원단이 결성되었다. 1991년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서는 남북한 단일팀이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와 재일본대한민국민단 동포들로 구성된 공동응원단의 응원과 함께 중국을 꺾고 우승하였고, 양국의 국가 대신 「아리랑」이 울려 퍼지는 감동을 자아내기도 하였다.
공동응원단을 계기로 재일 한인의 화합과 교류를 위한 중기 방침을 정한 재일본대한민국민단은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와의 교류에 나섰으며, 재일동포교류촉진협의회를 조직하여 대화와 교류를 위한 창구의 일원화, 비정치적, 인도적 문제에 대한 구상을 하였으나,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다.
그러나 2002년 한일월드컵 관람을 제안하고 재일본대한민국민단 대표단이 평양에서 개최된 아리랑축제를 참관했으며, 그 후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및 재일본대한민국민단 대표단이 한일월드컵 관전을 위해 한국을 방문하기도 하였다. 2006년 5월 남북 공동 성명의 이념에 따라 재일 한인의 반목과 대립을 화해와 화합으로 전환하자는 취지의 만남을 가지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