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 항목명 | 空手道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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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空手道 |
영문 | Karate |
분야 | 문화·교육/체육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일본 |
시대 | 현대/현대 |
원어 항목명 | 空手道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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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재일 한인사회에 널리 전파된 무도 혹은 격투술.
공수도(空手道)의 기원은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인도에서 시작하여 중국을 거쳐 류큐왕국(琉球王国)으로 들어가 발전했다는 기원설과 류큐왕국에서 발상(發祥)하여 당(唐) 무술의 영향을 받았다는 설 등이다. 이러한 류큐왕국의 무술에 일본 무술의 영향을 받아 발전한 것이 지금의 공수도이다.
류큐[현 오키나와현]를 지배한 사쓰마번(薩摩藩)의 무기 금지 정책으로 인하여 류큐의 사족(士族)들이 비밀리에 맨손[徒手空拳]으로 싸우는 무술로 전승하였다. 메이지유신(明治維新) 이후 류큐 침탈 후 오키나와현[沖繩縣] 설치를 통해 그 존재가 공식적으로 알려졌다.
1922년 일본 문부성(文部省) 주최 제1회 체육전람회에서 류큐인 후나코시 기친[富名腰義珍]이 당수연무(唐手演武)의 첫 선을 보였다. 이것이 공식적으로 선보인 첫 공수도였다. 게이오기주쿠[慶應義塾] 등에 당수동호회가 창립되면서 학생들을 중심으로 보급되었다. 1934년 무도를 통괄하였던 대일본무덕회(大日本武德會)가 당수(唐手)를 공수(空手)로 개칭할 것을 승인하였다. 공(空)은 불교 반야심경(般若心經)의 ‘공空’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또한, 만주 사변 등 대립적인 중·일 관계에서 적국의 구 왕조인 당(唐)의 표기가 문제시되었기 때문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공수도는 재일 조선인의 호신 격투기로도 널리 퍼졌다. 일본 사회에서 피차별 마이너리티로서 살아가기 위한 호신술이 필요했던 청년층, 특히 유학생들에게 수용되었다고 한다. 다양한 호신술 중에 공수도가 널리 퍼진 이유는 첫째, 타격계 무술이라는 즉효성, 둘째, 재일 한인 학생들도 쉽게 접할 수 있었던 점이다. 일본에게 정복당한 류큐의 무술이라는 이유로 검도나 유도처럼 일본 군대에서는 채용되지 않아 공수도의 보급은 학생을 중심으로 이뤄졌다. 따라서 재일 한인 학생들도 쉽게 접하는 호신술이 되었다.
교토제국대학[京都帝國大學]의 강창수(姜昌秀)[일본명 나카무라 히데오(中村日出男)], 리쓰메이칸대학[立命館大學]의 조영주(曺寧柱), 오야마 마스터쓰[大山倍達] 등이 재일 한인 공수도의 대가들이다. 재일 한인 사회는 해방 후에도 저명한 공수도 선수를 배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