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 항목명 | 朝連旗 |
---|---|
한자 | 朝聯旗 |
분야 | 문화·교육/언론·출판 |
유형 | 문헌/연속 간행물 |
지역 | 일본 |
시대 | 현대/현대 |
창간 시기/일시 | 1948년 8월 |
---|---|
소장처 | 일본 도쿄도 지요다구 나가타정 1-10-1 |
제작|간행처 | 일본 기후현 |
원어 항목명 | 朝連旗 |
관련 인물 | 김재열|김상규|김상호|오위영|정유진 |
1948년 창간된 재일본조선인연맹 기후현 본부의 기관지.
『조련기(朝聯旗)』는 재일본조선인연맹(在日本朝鮮人聯盟)[조련] 기후현 본부[岐阜縣本部]의 기관지로, 일본어로 된 월간(月刊) 신문이다. 현재 남아 있는 것은 1948년 9월 1일 『조련기』 2호 , 1948년 10월 1일 『조련기』 3호이다. 그러므로 창간호는 1948년 8월 1일에 발행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편집위원으로는 김재열, 김상규, 김상호, 오위영, 정유진이 참여하였다.
『조련기』는 신문 형태를 취하고 있으며, 일본어로 매달 간행되었다.
‘총력을 인민중앙정부 수립으로!’라는 슬로건 아래 발간된 『조련기』2호의 주요 기사로는 「조련 제15회 중앙위원회 교토[京都]에서 열다. 남북지도자협의회의 결정을 지지」, 「헌법 실시를 전면적 지지」, 「도쿄역전[東京驛前]에 조련회관 중층 신 가옥으로 이전 완료」, 「남로당원 10여 명 검거되다」, 「8·15 해방 기념일을 맞이하여」 등이 수록되어 있다. 이외에 ‘계몽란’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헌법[2]」, 「해설 : 조련과 민단[하]」가 실려 있는 것으로 보아, 두 기사는 창간호에 각각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헌법[1]」과 「해설 : 조련과 민단[상]」이 실려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또한 「해방 기념일에 14명 표창」이라는 기사를 통해, 조련 결성 이래 자신의 생활을 희생하면서 ‘대중과 조국’을 위해 활동한 황의도, 이상갑, 백재남, 조성제, 권봉천, 이석기, 마쓰나미 시즈코[松波靜子] 등 14명에 대해, 기후현 본부에서 주최한 해방기념인민대회에서 표창을 하였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신 정세에 대처하여 기후지부 정기대회 열다」라는 기사를 통해서는, 1948년 8월 20일 열린 제2회 정기대회에서 ‘1. 문맹을 퇴치할 것, 2. 조직을 강화할 것, 3. 생활개선에 노력할 것, 4. 민주인민공화국 전취에 노력할 것, 5. 재무 확립을 위해 맹원비의 완납, 기관지와 여러 물품대의 바른 정산’ 등에 대해 결의하였음을 알 수 있다.
‘미군 주둔 계속 절대 반대, 소련군과 동시에 미군도 철퇴시키자’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발간된 『조련기』3호에는 「성명서」, 「소동맹군(蘇同盟軍) 본년(本年) 중에 철병한다 : 양군 철별 요청에 응하여 김두봉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에 통고」, 「조국 소식」, 「주장 : 인민공화국 독립의 축하 투쟁을 전개하자」, 「성명서」, 「‘조선인민공화국 경축 주간’ 28일 경축대회 준비위원회에서 구체적 방침 제안 토론하자」, 「교육자의 인격과 실력을 향상시키자」, 「제5회 전체대회 의안」 등이 실려 있다. 「성명서」에서는 외국군 철퇴 요구에 대해 “재일 동포는 소 동맹군이 조국으로부터 무조건 철군한다고 하는 우의에 대해…경의와 감사의 뜻”을 표한다면서 미군(美軍)도 동시에 철군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아울러 당시 기후현 본부의 대의원 수가 총 200명, 집행 위원이 51명이었음을 알 수 있다. 3호의 ‘계몽란’에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헌법(3)」이 실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