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 항목명 | 無産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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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無産者 |
분야 | 문화·교육/언론·출판 |
유형 | 문헌/연속 간행물 |
지역 | 일본 도쿄도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창간 시기/일시 | 1929년 5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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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간|종간 시기/일시 | 1930년 6월 |
제작|간행처 | 일본 도쿄도 |
원어 항목명 | 無産者 |
관련 인물 | 고경흠(高景欽)|김삼규(金三奎)|김치정(金致禎)|김두용(金斗鎔)|이북만(李北滿) |
발행인 | 이병찬(李炳瓚) |
1929년 일본 도쿄도에서 재일 한인들에 의해 한글로 발행된 사회주의적 성격의 월간지.
『무산자』는 1929년 5월 설립된 무산자사(無産者社)에서 발간한 기관지로 사회주의적 성격의 월간 잡지이다. 잡지의 기획과 발간 등은 고경흠(高景欽), 김삼규(金三奎), 김치정(金致禎), 김두용(金斗鎔), 이북만(李北滿) 등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발행된 잡지는 조선과 일본 각지에 배포되었다. 『무산자』의 정확한 발간 호수는 알 수 없으나 1930년 6월호를 마지막으로 폐간되었다.
『무산자』는 1929년 5월 무산자사의 설립과 동시에 기관지로 창간되었다. 조선 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카프] 도쿄지부에서 발행하던 『예술운동(藝術運動)』의 속간으로서의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무산자사에서는 “금일 우리는 우리의 문화, 우리의 지식이 필요불가결한 것임을 깨달았다. 우리는 피압박 계급으로서의 지식이 필요하고, 이것을 무기로 지배 계급과 항쟁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닫는다. 우리는 우리가 가져야만 할 지식을 얻기 위하여 많이 배우지 않으면 안 된다.”라는 취지 아래 『무산자』를 발간하였다.
『무산자』의 편집자 겸 발행인은 이병찬(李炳瓚)이었고, 잡지의 구성과 내용은 고경흠, 김삼규, 김치정 등이 협의하여 결정하였다. 특히 고경흠이 주도하였으며, 고경흠이 없을 때는 김치정, 김삼규 등이 내용을 검토하여 게재하였다. 주된 내용의 방향은 프롤레타리아 예술이라는 입장에서 ‘조선 피압박 민족의 정신적 양식을 공급’하고 노동 운동과의 연대를 지향하였다. 『무산자』 3권 1호에서는 나카노 시게하루[中野重治]가 일본 프롤레타리아트와 조선 프롤레타리아트의 연대를 노래한 「비 내리는 시나가와역[品川驛]」을 한글로 번역 게재하여 유명해졌다.
『무산자』는 식민지 조선인의 문화와 지식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특히 피억압 민중의 입장에서의 실천적 활동을 지향하는 성격을 지녔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