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 항목명 | 民主靑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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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民主靑年 |
분야 | 문화·교육/언론·출판 |
유형 | 문헌/연속 간행물 |
지역 | 일본 도쿄도 분쿄구 유시마 3-1 |
시대 | 현대/현대 |
제작|간행처 | 일본 도쿄도 분쿄구 유시마 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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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어 항목명 | 民主靑年 |
발행인 | 재일본조선민주청년동맹 도쿄 본부 |
1940년대 발간된 재일본조선민주청년동맹 도쿄 본부의 기관지.
『민주청년』은 1940년대 무렵 재일본조선민주청년동맹(在日本朝鮮民主靑年同盟) 도쿄 본부의 문화부에서 발간한 것으로 추정되는 기관지이다.
『민주청년』 제7호에 따르면 재일본조선민주청년동맹은 1947년 10월 25일부터 27일까지 열리는 재일본조선인연맹의 제4회 전국 대회를 앞두고 1947년 9월 20일 제3회 임시 대회와 9월 25일 제39회 상임 위원회를 개최했다. 『민주청년』 제7호는 두 차례의 회의와 관련된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머리말에 해당하는 「[주장] 금후 우리의 활동」에는 조국을 둘러싼 복잡한 정세를 신중하게 분석하고, 이를 기반으로 대중에게 더욱 적극적인 선전·계몽 활동을 요구했다. 이 밖에도 이현철(李現哲)의 「조선 소년 운동의 사적 고찰과 재일 조선 소년 운동」, 「국제 청년일이란 어떠한 날인가」 등의 논설과 「조선 청년이 학살된 기거(寄居) 사건」, 「미소 공동 위원회에 관하여」 등의 글, 1923년 9월 1일 관동 대지진 때 학살당했던 조선인을 추모하는 백철(白哲)의 시 「추도(追悼)」와 정덕천(鄭德泉)의 「무제」도 함께 실렸다. 편집 후기에는 제3회 임시 대회를 통해 『민주청년』 편집부가 교체되었음을 알리면서 제8호부터 더욱 비약적인 발전을 한다고 밝혔다.
현재 남아 있는 것은 일본 국립국회도서관에 마이크로필름으로 소장된 제7호[1947년 10월 5일 발행]뿐이므로 창간일과 종간일을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