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 항목명 | 統一朝鮮新聞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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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統一朝鮮新聞 |
분야 | 문화·교육/언론·출판 |
유형 | 문헌/연속 간행물 |
지역 | 일본 도쿄도 미나토구 모토아카사카 1-7-4 |
시대 | 현대/현대 |
창간 시기/일시 | 1959년 1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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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간|종간 시기/일시 | 1973년 9월 |
개칭 시기/일시 | 1959년 11월 |
원어 항목명 | 統一朝鮮新聞 |
관련 인물 | 장기승(張基承)|원심창(元心昌)|이천추(李千秋)|이영근(李栄根)|강현철(康玹哲)|허창두(許昌斗)|전해건(全海建)|최수환(崔寿煥)|김봉진(金奉鎮) |
창간인 | 이영근(李榮根) |
조선신문사(朝鮮新聞社)는 조선의 통일 문제 해결을 위해 1959년부터 『조선신문』을 발행하였다. 1959년에 『통일조선신문』으로 이름을 바꾸었고, 1973년 다시 『통일일보(統一日報)』로 개칭하였다.
통일조선신문사의 주요 임원은 대표 장기승(張基承), 업무 주간 원심창(元心昌), 논설 주간 이천추(李千秋), 주필 이영근(李栄根), 편집장 강현철(康玹哲), 오사카 지국장 허창두(許昌斗), 고베 지국장 전해건(全海建), 교토 지국장 최수환(崔寿煥), 감사역 김봉진(金奉鎮)으로 구성되었다.
창간 초기에는 한국의 이승만·박정희 정권을 비판적인 시각으로 다루고 북한 비판에는 신중한 입장을 취했다. 1965년 결성된 한국민족자주통일동맹[한민자통]의 기관지가 되었다. 1967년경 통일조선신문사가 발행한 『통일 조선 연감』의 배포를 놓고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와 대립을 계속하면서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와 북한에 비판적인 논조로 변했다. 또 한국민족자주통일동맹의 기관지였으나 발행·편집인은 개인인 이영근이라는 모순도 작용하여 1968년경 한국민족자주통일동맹은 분열되었다. 이탈한 세력은 『민족통일신문』을 창간했다. 1969년 한국에서의 통일혁명당 사건과 북한 게릴라 사건 등을 계기로 북한에 대한 비판은 거세져 갔다. 1971년 재일 한국인 정치범 사건도 북한 대남 공작의 산물이라고 주장했다. 1972년 총련의 김병식 사건을 적극적으로 다루고, 또 1972년 10월 한국의 유신 체제를 필요악으로 보면서 지지했다.
1973년 9월 이름을 『통일일보(統一日報)』로 개칭하고 사실상 재일대한민국민단의 기관지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