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 항목명 | 亞細亞公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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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亞細亞公論 |
분야 | 문화·교육/언론·출판 |
유형 | 문헌/연속 간행물 |
지역 | 일본 도쿄도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창간 시기/일시 | 1922년 5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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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간|종간 시기/일시 | 1923년 1월 |
원어 항목명 | 亞細亞公論 |
창간인 | 유태경(柳泰慶) |
총호수 | 9호 |
1922년 일본 도쿄에서 재일 조선인 유태경이 간행한 월간 종합 사상지.
『아세아 공론』은 1922년 5월 조선 청년 지식인 유태경(柳泰慶)이 창간한 월간 사상지로 일본 정부의 탄압으로 1923년 1월 제9호까지 간행되었다.
“언론계의 대혁명! 정의 인도의 급선봉”이란 구호를 내건 『아세아 공론』은 ‘아시아 각국 인사들의 의견을 발표함과 동시에, 도쿄에 유학하는 각국 유학생의 사정 소식을 게재하고 일반 정치, 외교, 교육, 종교, 사회, 노동, 여자계, 문예, 그 외 각종 게재’하는 잡지라고 스스로를 정의한다. ‘아시아 각국의 인종 차별에서 비롯된 각종 폐해를 일소하고, 각국인에게 세계적 인류애의 자각을 촉구하여, 그를 기초로 각자의 천분을 발휘’하기 위해 발간된 『아세아 공론』은 아시아의 인종적 차별과 조선 문제의 실태를 전달하고, 공평한 비판을 통해 아시아에 정의 인도, 인류애를 실현하는 것을 발행 취지로 삼고 있다.
매월 1호씩 발행되는 월간지로 논평을 비록한 문학 작품도 게재하였다.
‘인류주의’를 사상적 구호로 내걸고 ‘아시아 각 민족 간의 연대’를 목표로 하는 『아세아 공론』에는 다이쇼 데모크라시 시기를 대표하는 일본 언론인·정치가·사회운동가뿐만 아니라, 조선인, 대만인, 중국인, 인도인 등이 매호 논문·논평 등을 투고했다. 또한 논평뿐만 아니라 문학 작품도 실려 있다. 논평 분야에선 사회적 영향력이 있는 저명인이 많았다. 문예란에는 프롤레타리아 문학의 영향을 받은 무명에 가까운 작가나 시인이 쓴 계급사적 혹은 반식민지주의적 색채가 강한 작품이 포함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