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 항목명 | 朝日新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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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朝日新報 |
분야 | 문화·교육/언론·출판 |
유형 | 문헌/연속 간행물 |
지역 | 일본 |
시대 | 현대/현대 |
폐간|종간 시기/일시 | 1949년 10월 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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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처 | 일본 도쿄도 지요다구 나가타정 1-10-1 |
제작|간행처 | 일본 홋카이도 하코다테시 |
원어 항목명 | 朝日新報 |
발행인 | 위춘원(魏春源) |
1940년대 재일본조선인연맹 등 재일 한인 관련 기사가 많이 실린 조일신보사 발행 신문.
『조일신보』는 2면 구성이었고 매월 3회 일본어로 발행되었다.
1947년 7월 21일 발행된 『조일신보』 제12호에는 「사설 매출이 가능한 운수」, 「선화 정책 기초 공작」, 「팔운의 시장 농장」, 「세계 평화 수립을 위하여」, 「상항과 직결하는 원대한 계획」, 「전차 운임 또 인상」 등의 기사가 실렸다. 재일 한인에 관해서는 「조련 지부 연락회」, 「조련 가메다[亀田] 분회 설립」, 「모리[森] 분회 근일 중 결성」 등 재일본조선인연맹의 지부 결성을 알리는 기사들과 재일본조선인연맹 지부의 활동 상황을 보도하는 기사들이 많았다. 1947년 7월 20일 새롭게 결성된 재일본조선인연맹 하코다테 지부 가메다 분회의 위원장은 한철도(韓哲道), 부위원장은 김관옥(金官玉), 총무부장은 전호언(全浩彦), 외무부장은 김종기(金鐘基), 청년부장은 유성락(兪聖洛), 재무부장은 하만준(河万俊)이었다. 『조일신보』 제13호에는 「사설 가정탄을 특종으로 취급하자」, 「하코다테, 모로랑이 시항인가?」 등이 실렸고, 「조선 독립의 지사 여운형 선생 사망」이라는 기사도 게재되었다. 여운형 관련 기사는 이후에도 몇 차례 게재되었다. 『조일신보』 제14호에는 「사설 하코다테 시민의 생활고」, 「소련 향조선 인수」, 「호텔의 긴급 대책」 등의 기사가 실렸다. 또한 재일본조선인연맹 지부 임시 총회에서 외국인 등록 문제, 청년부 강화와 계몽 운동, 문화 계몽의 강화, 하부 조직의 강화, 재정 확립과 회비 징집, 역원 선거에 관한 토의가 있었던 사실을 전하는 기사가 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