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련문화』

원어 항목명 朝連文化
한자 朝聯文化
분야 문화·교육/언론·출판
유형 문헌/연속 간행물
지역 일본  
시대 현대/현대
상세정보
창간 시기/일시 1946년 4월
폐간|종간 시기/일시 1946년 10월
원어 항목명 朝連文化
관련 인물 이상요(李相堯)
총호수 2호
정의

1946년 재일본조선인연맹 중앙총본부 문화부가 발행한 한글 종합 잡지.

창간 경위

『조련문화』의 편집인은 당시 재일본조선인연맹[조련] 문화부장을 맡고 있던 이상요(李相堯)였다. 이상요는 창간호 권두언 「민족 해방의 길은-조련문화를 발간하며」에서 “재일 동포 문화인 형제 자매여! 우리의 유일한 무기는 펜이다. 조국 건설은 즉 문화 건설을 의미한다. 정치와 문화는 별개의 것이 아니다.”라고 외치며 재일 코리안 문화인들의 결집의 필요성을 호소하였다. 그리고 재일 코리안 문화인들의 결집을 통한 ‘민주주의 조선 건설’과 ‘세계 민주주의 전선’에의 공헌이 『조련문화』의 창간 목적이라고 밝히고 있다.

형태

『조련문화』는 1946년 4월 창간호, 1946년 10월 제2호가 발행되었다. 『조련문화』는 각 호 5,000부씩 제작되었다.

구성/내용

『조련문화』의 발행은 계획한 지 6개월이 지나서야 이루어졌다. 해방 직후 한글 인쇄가 곤란하였고, 조선어[한글]로 원고를 쓸 수 있는 사람이 적었기 때문이다. 『조련문화』 창간호에는 재일본조선인연맹 부위원장 김정홍(金正洪)의 창간사를 비롯해 박병곤의 「민주주의」, 김사철의 「조선 청년의 사명」과 같은 논설문과 길원성의 「출발하는 우리 시단」, 이은직의 「춘향전과 조선 인민 정신」 등의 문예 평론이 실려 있다. 시 작품으로 허남기의 「내피를」, 정백운의 「하늘」이 실렸다. 또한 해방 직후 재일본조선인연맹 문화부 활동에 대한 보고로 임광철의 「예술과 인민 대중」이 실려 있으며, 특별 기고로 일본인 사회주의 학자 야마카와 히토시[山川均]의 「조선 동포에게」가 번역되어 게재되었다. 『조련문화』 제2호에는 김기억의 논설 「조선 민족성 소론론」과 재일본조선인학생동맹 전일본대회 참관 기록 「젊은이의 노선」[정동문], 특집으로 「교육 자료」와 「본국 문화 자료」 등이 실렸다. 창작으로는 허남기의 시 「청춘」, 이은직]의 「춘향전과 조선 인민 정신」(하), 차영의 희곡 「땅파는 사람들」 등이 실렸다.

의의와 평가

『조련문화』는 해방 직후 가장 이른 시기에 재일 조선인의 문화 예술 분야에 대한 정보와 문화 활동의 확산을 위해 발간된 잡지이다. 재일조선인연맹의 문화 예술 활동의 방향을 알아볼 수 있는 문헌이다.

참고문헌
  • 『현대 언론 매체 사전: 1950~1969』(성균관대학교 출판부, 2015)
  • 『在日朝鮮人關係資料集成: 戰後編』8(不二出版, 2001)
  • 宋恵媛, 『「在日朝鮮人文学史」のために: 声なき声のポリフォニー』(岩波書店,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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