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 항목명 | 自由論戦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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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自由論戰 |
분야 | 문화·교육/언론·출판 |
유형 | 문헌/연속 간행물 |
지역 | 일본 |
시대 | 현대/현대 |
창간 시기/일시 | 1946년 5월 1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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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처 | 일본 도쿄도 지요다구 나가타쵸 1-10-1 |
원어 항목명 | 自由論戦 |
성격 | 잡지 |
발행인 | 이의영 |
판형 | 타블로이드판 |
1946년 일본에서 재일 한인이 발행한 아나키스트 계열의 잡지.
『자유논전』은 해방 직후 아나키스트 계열 재일 한인이 발행한 잡지이다. 발행인 겸 편집인은 이의영(李義榮)이었고, 인쇄인은 토미자와 타메기치[富澤為吉]였다.
현재 1946년 5월 15일 발행한 창간호만 확인이 가능하다. 타블로이드판 2면 구성이고, 일본어로 발행하였다.
『자유논전』 창간사에서는 해방 직후의 세계를 “사상의 혼돈 시대”라고 규정하고, “민중 자신의 명확한 판단에 의해서가 아닌 세계를 제패하려는 두 강자의 이해관계에 의해 강요받고 있다.”고 하여 소련과 미국의 사상에 만족하지 않고 진정한 인간적 자유를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 외에 창간호에는 장상중(張祥重)의 「조선 동포가 요망(要望)하는 민주 정치」, 이와사 사쿠타로[岩佐作太郎]의 「조선 건국 운동에 대해서」, 후세 다쓰지[布施辰治]의 「직장의 학교화(1)」가 실려 있다. 장상중은 해방 전 박열(朴烈)과 함께 아니키스트 단체 흑우회(黑友会)를 조직하였고, 불령사(不逞社), 조선 자유노동자조합(朝鮮自由労働者組合), 흑색청년연맹(黑色青年連盟) 등의 단체에도 관여하였던 아나키스트였다. 이와시 사쿠타로는 장상중과 정태성(鄭泰成)이 흑도회(黑友会)를 조직할 때 후원하였으며, 해방 직후에는 일본에서 일본아니키스트협회[1946년 5월 12일 결성]의 위원장 등을 역임하였다. 후세 다쓰지는 해방 전부터 ‘박열 사건’ 등 재일 한인 운동가와 관련된 재판 등을 맡았던 변호사이다. 후세 다쓰지, 장상중, 장태성은 해방 직후 1946년 『운명의 승리자 박열』[世紀書房]을 출판하였다. 또한 『자유논전』에는 원심창(元心昌)으로 잘 알려진 원훈(元勲)과 한하연(韓何然), 자유사회건설자연맹(自由社会建設者連盟)의 축하 광고도 실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