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 항목명 | 民靑時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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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民靑時報 |
분야 | 문화·교육/언론·출판 |
유형 | 문헌/연속 간행물 |
지역 | 일본 |
시대 | 현대/현대 |
창간 시기/일시 | 1947년 7월 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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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간|종간 시기/일시 | 1949년 9월 |
제작|간행처 | 일본 도쿄도 미나토구 시바타무라마치 1-3 |
원어 항목명 | 民靑時報 |
성격 | 기관지 |
발행인 | 윤봉구 |
1947년 7월 5일 일본에서 창간된 재일본조선민주청년동맹의 기관지.
『민청시보』는 재일본조선민주청년동맹[민청]의 중앙 및 지방 본부 기관지이며, 1947년 7월 5일 창간되었다.
『민청시보』의 창간사에서는 “젊은 ‘10만의 목소리’ 우리의 기관지는 이렇게 탄생했다.”고 하면서 기관지의 임무가 “우리의 의지를 바르게 전하고 많은 청년들을 피억압(被抑圧)의 지위에서 구출하여 우리들 상호의 경험과 이상을 전국 동지 제군에게 보도하고 우리 운동의 전면적 발전을 기하는 일에 있다.”고 전하고 있다.
열흘에 한 번씩 발행하는 순간(旬刊)이었으며, 일본어로 발행되었다.
『민청시보』의 발행 부수는 1만 5천 부였고, 현재 1949년 8월 10일에 발행된 제59호까지 확인된다. 해방 후 재일본조선인연맹[조련]의 활동이 확대되는 가운데 1946년 8월 2일부터 열린 제7회 중앙위원회에서 “청년들의 독자적 조직과 자주 활동”을 위한 조직의 결성이 결정되어 1947년 3월 6일에 재일본조선민주청년동맹 결성 대회가 열렸다. 결성 당시 『민청시보』 발행은 민청의 문화교양부가 담당하였지만 1947년 8월 5일 제4호부터는 독립된 부서인 출판부가 담당하였다. 편집 위원은 윤봉구(尹鳳求)[재일본조선민주청년동맹 위원장], 이응복(李応福)[재일본조선민주청년동맹 부위원장], 김경천(金敬天)[출판부], 박재노(朴在魯)[외사부], 김사철(金四哲)[문화부], 김효식(金孝植)[조직부] 등 재일본조선민주청년동맹의 주요 활동가였다. 재일본조선민주청년동맹은 『민청시보』 외에 『민청뉴스』, 『전위대』, 『활동방침』을 발행하고 있었는데 1948년 7월부터 모두 『민청시보』로 통합되었다. 『민청시보』는 재일본조선민주청년동맹의 강제 해산[1949년 9월]으로 인해 종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