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공작』

원어 항목명 文化工作
한자 文化工作
분야 문화·교육/언론·출판
유형 문헌/연속 간행물
지역 일본  
시대 현대/현대
상세정보
창간 시기/일시 1953년 3월 20일
원어 항목명 文化工作
성격 기관지
정의

1953년 일본에서 조선학생동맹 관동 본부의 문화공작대가 발행한 기관지.

개설

『문화공작』은 조선학생동맹(朝鮮學生同盟) 관동 본부의 문화공작대가 1953년 3월 20일에 창간한 기관지이다.

창간 경위

『문화공작』은 각지의 재일본조선민주애국청년동맹, 학교, 소년단을 중심으로 조직된 문화공작대가 조선 대중에 대한 계몽 선전 교육 활동을 목적으로 발간하였다.

형태

『문화공작』은 2면 구성이며, 월 2회 조선어로 발행되었다.

구성/내용

『문화공작』 창간호 1면에는 「주장: 처음호를 내놓으면서」, 「학동 문공대의 임무」[임히사]와 북한 문화계의 소식을 전하는 「최승희 여사 등에 공로 예술가 칭호」 등이 실려 있었다. 2면에는 「조선 전선에 있는 중국 음악 공작자(工作者)」, 임건의 「‘어머니’ 연출을 담당하고」 등이 게재되었다.

변천과 현황

『문화공작』의 발행 주체인 재일조선학생동맹[조학동]의 역사는 해방 직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해방 직후 결성된 재일조선학생동맹[학동] 관동 본부[중앙 본부의 사무 겸임]는 좌익 계열의 세력이 강하였다. 제5회 정기 총회[1949년 5월]에서 좌우 대립이 심해져 결국 분열하고 말았는데, 우익계 세력은 1950년 11월 제7회 총회에서 재일한국학생동맹[한학동]으로 개칭하여 재일본대한민국민단(在日本大韓民國民團)에 가입하였다. 남은 좌익계 재일조선학생동맹도 1951년 5월에 제7회 대회에서 강령과 규약 등을 개정하고 재일조선통일민주전선에 가입하였다. 재일조선학생동맹 관동 본부의 문화공작대는 가요, 연국, 무용, 영화 등을 통해 재일 한인에게 한반도 정세를 알리고 이로써 재일 한인 대중을 조직화하기 위해 결성된 단체이다. 재일조선학생동맹 문화공작대는 각지의 재일본조선민주애국청년동맹[민애청]과 소년단을 중심으로 조직되었다.

『문화공작』 창간호에 의하면, 문화공작대는 1952년 10월에 결성되어 이후 반년 동안 교토[京都]와 오사카[大阪], 도쿄[東京]의 스기나미[杉並], 이타바시[板橋] 등의 지역에서 연극 「어머니」와 「불멸의 민족」 등을 준비해 약 30회 공연을 하였으며, 그동안 5만 명 정도가 참여하였다고 한다.

의의와 평가

『문화공작』은 가요, 연극, 영화, 연예 등을 통해서 조국의 정세나 재일 조선인을 둘러싼 상황을 전달하고 조선인을 조직화하는 계기로 작용하였다.

참고문헌
  • 『在日朝鮮人關係資料集成: 戰後編』8(不二出版, 2001)
  • 宋恵媛, 『「在日朝鮮人文学史」のために: 声なき声のポリフォニー』(岩波書店,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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