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 항목명 | 文教新聞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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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文敎新聞 |
분야 | 문화·교육/언론·출판 |
유형 | 문헌/연속 간행물 |
지역 | 일본 |
시대 | 현대/현대 |
창간 시기/일시 | 1947년 9월 1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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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간|종간 시기/일시 | 1949년 8월 |
원어 항목명 | 文教新聞 |
성격 | 신문 |
발행인 | 최선(崔鮮) |
총호수 | 60호 |
1947년 9월 15일 일본에서 조선문화교육회에 의해 창간된 일본어 신문.
『문교신문』은 1947년 9월 15일 조선문화교육회에서 창간한 일본어 신문이다. 발행처인 조선문화교육회는 김두원을 중심으로 1945년 9월 15일에 결성되었다. 조선문화교육회의 회장으로 1945년 12월 최선(崔鮮)이 취임한 후 ‘문화 국가 조선’의 건설을 목표로 문화 교육 사업을 전개하였다. 한국 정부 수립 후 일본에서 한국 국정 교과서의 번각본 발행과 학교 운영에도 관여하였다. 발행 겸 편집인 최선은 조선건국촉진청년동맹[건청]의 문화부장 및 재일본대한민국거류민단[민단]의 중앙총본부 문화국장·총무국장을 역임하였다.
『문교신문』은 1945년 9월에 결성된 조선문화교육회 설립 2주년이 되는 해에 창간되었다. 창간사에 “사상도 주장도 좋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인간적으로 되는 것이다. 우리는 무엇보다도 먼저 개인의 인격 완성을 통해 조국 건설의 대도(大道)를 더듬어 가자.”고 적혀 있다. 극좌와 극우의 배제, 근로 문화의 창조, 문화인의 우대를 통한 문화 국가 조선의 건설을 목표로 한 신문이다.
『문교신문』은 공산주의에 반대하는 입장을 견지하면서도 한국에서의 단독 선거에 반대하여 남북 완전 통일을 호소하였다. 동시대의 일본, 중국, 유럽의 문화 관련 뉴스를 소개하고, 민족주의 진영의 재일 한인 문화인들의 시, 소설, 평론 등을 다수 게재하였다.
1947년 9월 15일에 창간된 『문교신문』은 용지 부족과 경영난으로 인해 제56호[1949년 2월 28일]를 마지막으로 휴간을 선언하였지만, 같은 해 4월에 제57호[1949년 4월 11일]에 복간하여 제60호[1949년 8월]까지 발행하였다. 발행 부수는 5만 부였으며, 매주 월요일에 발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