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간 잔소리』

원어 항목명 季刊ちゃんそり
분야 문화·교육/언론·출판
유형 문헌/연속 간행물
지역 일본 도쿄도  
시대 현대/현대
상세정보
창간 시기/일시 1979년 9월 20일
폐간|종간 시기/일시 1981년 12월
제작|간행처 일본 도쿄도 시부야구 하타가야 1-12-11
원어 항목명 季刊ちゃんそり
성격 잡지
발행인 잔소리모임[ちゃんそり会]
총호수 8호
정의

1979년 일본 도쿄도에서 재일 한인 2세들이 중심이 되어 발행한 일본어 잡지.

개설

『계간 잔소리』『계간 마당』[1973년 10월~1975년 6월] 종간 후 편집부에 있던 재일 한인 2세들을 중심으로 발행되었다. 편집 위원에는 오덕수(呉徳洙), 김두년(金斗年), 박용복(朴容福), 이정차(李定次), 다케다 세이지[竹田青嗣], 야마구치 후미코[山口文子], 그리고 유일한 일본인 미무로 이사무[三室勇] 등이 있었다. 창간 자금은 영화 감독인 오덕수가 도에이[東映] 노사 분쟁에서 얻은 자금으로 충당하였다.

창간 경위

『계간 잔소리』는 재일 한인 2세, 3세들이 일본 사회 속에서 ‘일본인화’ 되어 가는 현실을 직시하고 새로운 전망을 제시하는 것이 발행 목적이었다.

구성/내용

『계간 잔소리』 창간호의 편집 후기를 맡은 박용복은 재일 한인 1세로부터 받은 전화 내용을 소개하고 있는데, 전화의 대부분이 “우리 아이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젊은 세대들의 솔직한 의견을 실어 주었으면 좋겠다.”는 내용이었다고 한다. 『계간 잔소리』는 이와 같은 발행 취지에 맞게 민족적인 규범에 구애받지 않고, 재일 한인 젊은 세대들이 안고 있는 ‘민족’, ‘조국’, 가족, 혼혈 등과 관련된 문제들을 재해석하고 다양한 ‘재일상(在日像)’을 보도하였다. ‘북이냐, 남이냐’라는 질문에 한 편집 위원이 ‘동쪽이다’라고 대답한 것은 이와 같은 『계간 잔소리』의 발행 태도를 잘 보여 준다. 『계간 잔소리』에는 정대균, 김명관, 김경남, 종추월 등의 재일 한인 2세 작가들이 글을 기고하였다.

변천과 현황

『계간 잔소리』는 1981년 12월까지 발행된 후 폐간되었다.

참고문헌
  • 『재일코리안사전』(정희선 외 옮김, 선인, 2012)
  • 『현대 언론 매체 사전: 1950~1969』(성균관대학교 출판부,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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