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영화사

원어 항목명 民衆映画社
한자 民衆映畵社
분야 문화·교육/문화·예술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일본  
시대 현대/현대
상세정보
설립 시기/일시 1946년 7월
해체 시기/일시 1947년 9월
원어 항목명 民衆映画社
성격 영화사
설립자 재일본조선인연맹
정의

1946년 일본에 재일본조선인연맹이 설립한 영화사.

설립 목적

민족 문화의 일환으로 민족 문화의 건설과 고국 한반도보다도 비교적 기자재의 입수가 유리한 일본에서 조선 영화 제작에 기여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변천

민중영화사에서 활동한 인물에는 제작과 운영에 이상효, 남호영, 김순명 등이 있었다. 기술에는 김도한, 허남기, 김봉우, 신광우, 정박 등이 있었다. 기자재나 기술의 협조를 얻고자 일본 영화사와 예술 영화사에서 이적해 온 인물들도 상당수 포함되어 있었다. 민중영화사에는 한 때 30명이 넘는 스태프가 소속된 시기도 있었다. 그러나 자본금 500만 엔을 모금할 계획이었으나 그 절반도 모으기 어려워지자 1947년 9월에 활동을 중지하였다.

민중영화사의 기자재는 오사카에 있는 재일조선인 상공인에게 매각되었으며, 신광 영화사로 개칭되었으나 특별한 활동은 확인되지 않는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민중영화사는 1947년 3월까지 매월 1편 정도의 속도로 조련뉴스 13보를 제작하였으며, 「해방후의 조선」[일본어판], 「효고현의 동포들」 등과 같은 기록 영화도 제작하고 상영하였다. 또한 『해방신문』에 따르면 1946년 9월 허남기의 구성으로 「패전 일본 1년사」를 완성하였다고 한다.

의의와 평가

민중영화사는 ‘조련뉴스’의 제작과 상영 등 재일본조선인연맹 시절 영화 활동의 선봉 역할을 하였다. 재일 조선인 영화 활동의 출발은 물론 문화 활동의 영역 확산에도 크게 기여하였다.

참고문헌
  • 吳圭祥, 『ドキュメント在日本朝鮮人連盟: 1945~1949』(岩波書店, 2009)
  • 『在日年鑑』1949年版(1949)
  • 『解放新聞』(1949. 9.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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