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 항목명 | 映画監督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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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映畵監督 |
분야 | 문화·교육/문화·예술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일본 |
시대 | 현대/현대 |
원어 항목명 | 映画監督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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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해방 이전부터 현재까지 일본 영화계에서 활동한 재일 한인 영화감독.
1945년 해방 이전부터 일본 영화계에서 활동한 감독으로는 김경식(金慶植)을 들 수 있다. 김경식은 일본의 도요대학[東洋大學]을 졸업한 후 1943년 일제 강점기 조선 영화계에서 활동한 영화감독 최인규(崔寅奎)를 사사하기도 하였다. 김경식은 1945년 일본에서 재일 코리안들의 연극을 활성화시켰다. 또한 1972년부터 1974년에 걸쳐서 한국의 박정희(朴正熙) 정권에 맞서는 민주화 운동을 다큐멘터리 「통일의 불꽃」으로 제작하였다. 1975년 김경식은 오카모토 요시히코[岡本愛彦]와 공동 작품인 「고발」을 제작하였다. 극영화로는 재일 한인 2세 이학인(李學仁) 감독이 최초이다. 이학인은 1975년 「이방인의 강」으로 데뷔하여, 1978년 「시우(詩雨) 할머니」, 1979년 「빨간 댕기」[미공개] 등을 제작하였지만, 일본 영화 시장의 침체된 분위기 탓으로 알려지지 못하였다.
재일 한인 감독이 일본 영화계에서 활동한 시기는 1980년대 이후 일본 영화가 침체기에서 벗어나기 시작하면서부터이다. 특히 1983년 최양일(崔洋一) 감독의 활약은 재일 한인 감독들에게 많은 자신감을 주었다. 1981년 김수길(金秀吉)은 시나리오 「윤의 거리」로 기도상(城戶償)을 수상하였고, 또한 1986년 「그대는 맨발의 신을 보았는가」로 영화감독으로 데뷔하여 문화청 우수영화 작품상을 수상하였다. 1989년 김우선(金佑宣)은 「윤의 거리」로 감독으로 데뷔하였으며 재일 한인 출신의 촬영감독이었던 김덕철(金德哲)은 1994년 모리 야스유키[森康行]와 공동으로 다큐멘터리 「강을 건너는 사람들」을 제작하였다. 「강을 건너는 사람들」은 키네마준보 문화영화 베스트 10에서 1위를 차지하였다. 오덕수(吳德洙) 감독은 재일 코리안 다큐멘터리를 계속 제작한 감독으로 1997년 전후 재일 50년사를 다룬 기록 영화 「재일」로 잘 알려져 있다.
일본인 영화감독인 이마무라 쇼헤이[今村昌平]는 요코하마(橫浜) 영화전문학원을 설립하였는데 요코하마 영화전문학원 출신 재일 한인 감독들이 두각을 나타냈다. 대표적인 예로 김수길과 오충공(吳充功) 감독이 있다. 오충공 감독은 관동 대지진 조선인 학살을 목격한 사람들의 인터뷰를 통해 「감춰진 손톱자국」[1983]을 비롯하여 「끌려온 조선인」[1986]을 제작하였다. 요코하마 영화전문학원의 후신인 일본영화학교에서도 젊은 재일 한인 인재들이 배출되었는데, 한국에도 잘 알려진 이상일(李相日) 감독이 일본영화학교 출신이다. 이상일은 졸업 작품 「청(靑)-chong-」[1999]으로 주목 받았고, 2004년 「69 sixty nine」으로 일본 영화계에서 인정받는 감독으로 자리매김한 후, 2006년 「훌라 걸」로 대성공을 거두었다.
그 밖에도 연극계에서 유명한 김수진(金守珍) 감독은 2001년 「밤을 걸고」를 제작하였으며, CM감독으로 유명한 구수연 감독은 2003년 「우연히도 최악의 소년」으로 영화감독으로 데뷔하였다. 현재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재일 한인은 3세가 중심이 되고 있으며 마쓰에 데쓰아키[松江哲明] 감독의 「안녕 김치」[1999]와 같은 작품에서 볼 수 있듯이 영화 속에서 다양한 정체성의 가능성을 보여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