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하타 제철과 히가시다 용광로 자료관

원어 항목명 八幡製鐵と東田高炉資料館
분야 문화·교육/교육
유형 지명/시설
지역 일본 후쿠오카현 기타큐슈시  
시대 현대/현대
상세정보
준공 시기/일시 1901년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15년
최초 설립지 일본 후쿠오카현 기타큐슈시
원어 항목명 八幡製鐵と東田高炉資料館
원어 주소 日本国福岡県北九州市八幡東区東田二丁目3番12号
성격 전시관
전화 093-582-2391
홈페이지 http://www.city.kitakyushu.lg.jp/shimin/02100262.html
정의

일본 후쿠오카현 기타큐슈시에 있는 일제 강점기 조선인을 강제 동원한 제철소에 건립한 역사 자료관.

개설

야하타 제철은 일본 근대 제철 공업의 발상지라고 한다. 야하타 제철소는 청일 전쟁의 승리로 얻은 배상금을 기초로 하여 1901년 일본 정부에서 세운 관영 제철소로 출발하였다. 1934년부터는 관민(官民)이 협동으로 세운 일본 제철이 관리하였다. 기타큐슈시[北九州市] 지쿠호[筑豊] 탄광 지역의 풍부한 석탄을 지원받아 일제의 침략 전쟁과 더불어 군수 산업을 발전시켰으며, 제2차 세계 대전 때까지 일본 내 철강 생산량의 절반 이상을 담당하였다. 아시아-태평양 전쟁 기간 중에는 극심한 노동력 부족으로 인해 6천 명 이상의 조선인을 강제로 동원하였으며, 이 외에도 중국인과 포로 등을 가혹한 노동 조건에서 강제로 노동시켰다.

또한 일제 패망 후에는 미지급 임금도 지불하지 않고 사망자의 유골조차 반환하지 않고 방치하는 등의 악행을 저질렀다. 이 때문에 1995년부터 과거 조선인 징용자와 유족들이 신일본 제철(新日本製鐵)[야하타 제철은 1970년 후지 제철[富士製鐵]과 합병하여 신일본 제철(新日本製鐵)로 재탄생]과 일본 국가를 상대로 여러 차례 소송을 제기하며 미지불 임금과 유골 및 공탁금(供託金)의 환원과 사죄 등을 요구하였다. 신일본 제철에서는 조선인 징용 사실은 인정하지만 보상은 1965년 한일 기본 조약으로 해결되었다는 입장을 고수함으로써, 현재까지도 상호 간의 재판은 계속되고 있다.

한편 기타큐슈시는 야하타 제철을 중심으로 한 역사의 현장을 ‘히가시다 제1용광로 사적 광장[東田第一高炉史跡広場]’으로 하여 시 문화재로 지정하고 자료관을 건립하였다. 하지만 이 자료관의 전시물 설명에는 일제 강점기 조선인 등의 강제 연행과 강제 노동 사실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언급되어 있지 않다.

일본 정부는 이 시설들을 비롯한 침략 전쟁과 강제 노동의 역사적 현장의 유네스코 지정을 추진하여, 2015년에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시켰다.

건립 경위

야하타 제철소는 청일 전쟁의 승리로 얻은 배상금을 기초로 하여 1901년 일본 정부에서 세운 관영 제철소로 출발하였고, 일제말 전시 체제기에는 다수의 조선인을 강제로 동원하였다. 히가시다 용광로 자료관[東田高爐資料館]은 기타큐슈시에서 시 문화재로 지정하고 건립한 자료관인데, 강제 연행과 강제노동 대한 사실은 일체 전시하고 있지 않다.

구성

야하타 히가시구에 있는 히가시다 제일 용광로 자리 2층에 상설 전시관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제철소의 설립 과정 및 역사 등을 소개하는 판넬 등이 설치되어 있다.

현황

야하타 제철은 기타큐슈시 도바타구[戸畑区]와 야하타 히가시구[八幡東区]에 있는 시설들을 모두 통틀어 일컫는 말이다. 현재는 신일철주금에서 관리하고 있으며, 한국의 포스코와 전략적 제휴 관계를 맺고 있다. 일본 정부는 이 시설들을 비롯한 침략 전쟁과 강제 노동의 역사적 현장의 유네스코 지정을 추진하여, 2015년에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시켰다.

참고문헌
  • 『小田山墓地·朝鮮人遭難の碑』(小田山墓地追悼集會 パンフレット作成委員會, 2014. 9)
  • 한국경제 TV(2015. 7. 6, http://www.wowtv.co.kr/newscenter/news/view.asp?bcode=T30001000&artid=A20150706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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