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립 조선인 학교

원어 항목명 公立朝鮮人学校
한자 公立朝鮮人學校
분야 문화·교육/교육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일본  
시대 현대/현대
상세정보
원어 항목명 公立朝鮮人学校
정의

일본에서 1949년 학교 폐쇄령에 따라 일본의 행정 기관과 일본인이 운영했던 조선인 학교.

변천

1945년 제2차 세계 대전 패전 직후, 재일 조선인이 한국어를 사용해서 학습을 하는 장소로 ‘국어강습소’를 설립한 것이 기원으로 되어 있다. 이듬해 1946년에 재일조선인연맹의 학교로 발전했다. 그후 1948년에는 연합군 최고사령부[GHQ]의 정책에 의해 일본 정부는 재일 한국 조선인을 동화시킬 목적으로 1948년 1월, 오사카[大阪]부 등에 「조선 학교 폐쇄령」을 공포했다. 이에 재일본조선인총연연합회계 학교가 중심이 되어 강하게 반발하였다. 이러한 반대 운동 전개로 인해 아이치현[愛知県]에서는 학교 폐쇄령을 철회한다는 약속을 받았다. 이것을 「4·24교육 투쟁」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날 GHQ에 의한 비상 사태 선언으로 운동에 참가한 학생들 3천여 명이 체포 구금되고 16세 소년이 사살되었다. 그후 1949년 일본 정부가 일방적으로 조선 학교 폐쇄령을 내려 현재의 총련계 학교를 일시 폐쇄시키고, 일본 내 학교에서 민족 교육을 금지하였다.

1950년대 중반에는 재일본대한민국민단,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가 민족 교육을 위하여 학교 재건 활동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이 가운데 창립 이후부터 중립 노선을 지양했던 백두학원(白頭学園)은 정규 학교인 일조교(一条校)가 되었다. 1957년에는 북한이 재일 조선인들을 위한 교육 원조비를 지원해 초창기 자금난에 시달리던 조선 학교에 큰 도움이 되었다. 이에 반해 재일본대한민국민단에서 대한민국 정부에 대해 교육 지원을 요청했지만 정부는 적극적인 지원을 하지 않았다.

1960년대~1970년대에는 전국 각 도도부현이 조선 학교를 각종 학교로 인가하였으며, 1975년에 이르러 모든 조선 학교가 각종 학교로 인가를 받았다. 당시 가학 교수 및 학생 수가 최대에 이르렀다. 그후 2010년 12월 일본 정부는 경영난에 허덕이던 아이치, 기타큐슈[北九州], 도호쿠[東北], 지바[千葉] 지방에 있는 조선 학교 13곳의 건물과 토지를 가압류하였다.

현황

학생 수를 살펴보면 1970년대 초반 일본 전국에서 4만 6천 명에 이르렀던 조선 학교의 학생 수는 2004년에1만 1500명까지 감소하였다. 배경에는 일본 사회에서 부정적인 이미지와 학력 인정교가 아닌, 상급 학교 진학에 불리한 조건 때문에 기피하는 현상이 두드러졌다. 한편 재일 조선인 자제들이 저출산 현상으로 인해 해마다 감소하고 있는 추세이다. 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학생 수 감소로 인한 조선 학교에 신규 입학을 기피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현재는 국적을 불문하고 학생들을 입학시키고 있으며, 중국 출신의 조선족 자제도 입학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고급 학교 졸업 후의 진로는 주로 조선대학교, 일본의 일반 대학 등에 진학하거나 취직을 한다. 취직의 경우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의 관련 사업체나 재일 조선인, 재일 한인이 경영하는 기업으로 취직하는 경우가 많다. 조선대학교 졸업자는 조선 학교 교사가 되는 경우도 있고, 대한민국이나 해외에서 유학하는 사례도 있다.

참고문헌
  • 임영상 외, 『코리아타운과 한국문화』(북코리아, 2012)
  • 北野秋男, 『わかりやすく学ぶ教育制度』(啓明出版, 2010)
  • 『在日コリアン辭典』(明石書店,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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