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 항목명 | 川崎在日韓国·朝鮮人教育をすすめる会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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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 | 문화·교육/교육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일본 가나가와현 가와사키시 |
시대 | 현대/현대 |
설립 시기/일시 | 1982년 6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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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어 항목명 | 川崎在日韓国·朝鮮人教育をすすめる会 |
1982년 일본 가나가와현에서 가와사키시 공립 학교의 민족 차별을 하기 위해 결성된 단체.
가와사키[川崎] 재일 코리안 교육을 추진하는 모임은 가와사키 교육위원회와 장기간에 걸쳐 토론을 거듭하여 ‘가와사키시 재일 외국인 교육 기본 방침-주로 재일 코리안 교육’을 이끌어냈다. 기본 방침은 ‘일본의 역사 속에서 재일 코리안에 대한 민족적 편견과 차별이 조성되었을 뿐만 아니라 지금도 뿌리깊이 존재하고 있음을 충분히 인식했습니다. 가와사키시 또한 학교 현장에서 민족 차별이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 가와사키시 교육 위원회는 지금까지 열심히 호소해오신 재일 코리안 분들의 아픔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이러한 상황에 입각하여 차별과 편견이 없는 교육을 종합적으로 추진할 것을 약속합니다’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가와사키 재일 코리안 교육을 추진하는 모임은 가와사키시 공립 학교의 민족 차별을 해소하고 일본인과 연대하면서 지역 사회에 이바지하기 위해서 결성되었다. 이인하 목사가 실질적 지도자였다.
가와사키 재일 코리안 교육을 추진하는 모임은 1982년 6월에 결성되었다.
1984년 가나가와현(神奈川県) 주최의 ‘후레아이=상호 교류(触れ合い)교육’ 실천 학교로 사쿠라모토 소학교, 히가시사쿠라모토 소학교, 사쿠라모토 중학교가 지정되었다. 연구 주제는 ‘재일 코리안과 일본인 아동의 상호 교류를 통한 인권 존중’이었다. 이와 같은 활동을 통해서 이전에는 가시화되지 않았던 학교 내 민족 차별 실태가 점점 명확해졌을 뿐만 아니라, 편견 없는 교육의 필요성을 교원들이 다시 인식하게 되었다. 이 외에도 1986년 가와사키시는 위의 세 학교를 인권 존중 교육 연구 위탁교로 지정해서 ‘기본 방침’을 구체화시키고자 하였다.
‘기본 방침’은 학교 교육뿐만 아니라 사회 교육에도 영향을 미쳤는데, 이는 후레아이관의 방침과도 관계가 깊다. 후레아이관은 가와사키 조례에 의해 설치되었으며, 사회복지법인 세이큐사[靑丘社]에 운영 위탁되는 사회 교육 기관이며 아동 복지관이다. 그러나 실제로 후레아이관 구상이 구체적으로 진행되어 착공을 앞둔 상황에서 건설이 연기되었다. 지역의 주민 단체가 반대했기 때문이었다. 이후 설득을 거듭하고 서로 양보한 결과 가와사키시에 청소년 회관 설립을 요구한 지 6년만에 후레아이관이 개관되었다.
후레아이관은 청구사의 운영뿐만 아니라, 가와사키시의 제도적 기반 조성, 지역 주민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의 이해와 이용을 통해서 평가받을 수 있을 것이다. 지역 실태를 제대로 반영한 사업을 위하여 당사자인 일본인 지역 주민이 이를 어떻게 수용해야 하는가가 문제였다. 1980년대 중반 당시, 행정의 방침 전환과 지역 주민의 승인을 얻는 일은 쉽지 않았다. 가와사키시와 가나가와현의 혁신 계열의 지자체장과 지향하는 방향이 같았고, 사회 운동에 열성이었던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보편 과제로 추진할 수 있는 유리한 조건이 있었다. 모임의 지도자였던 이인하는 보편성에 대해여 ‘민족이라는 것은 아주 개별적인 문제입니다. 민족이 모든 사람들에게 의미있는 표현이 되기 위해서는 보편성을 가져야 합니다……(중략)……공생 가능한 마을 조성에 대하여 지역 전체의 합의를 얻기 위해서는 역시 기득권을 가진 다수에게도 의미 있는 공통 과제여야 합니다.’라고 언급하였다. 결국, 행정 당국, 지역 주민, 사회 운동가 3자가 지역 실태와 청소년의 건전한 육성이라는 공통 과제를 공유, 확인하기까지 상호 과정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가와사키 재일 코리안 교육을 추진하는 모임이 성과를 올릴 수 있었던 것은 시 행정 당국, 지역 주민, 사회 운동가 3자가 ‘지역 실태’와 ‘청소년의 건전한 육성’이라는 공통 과제를 공유, 확인하기까지 상호 과정이 있었기 때문이다.